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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Sep 08. 2023

여정을 시작하며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라도

미국에 도착했다. 내 인생에서 없을 것만 같았던 외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다행히도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쉽게 준비를 마쳤고 많은 것들이 구비된 상태로 도착했다. 이런 면에서 나는 너무나도 과분한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불안을 떨쳐낼 수는 없다. 미국으로 가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단순히 다른 문화에서의 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적응만의 문제가 아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에 대해 느낀 한계이다. 이 학교를 계속 다닌다고 해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 한계. 그렇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나갈 것을 가족들이 권유했다. 처음에는 여러 번 망설였지만 결국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나로서도 그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이 유학은 나를 위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가족들을 위한 결정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새로운 나라에 갔을 때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도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나를 후원해 준 가족들에게 실망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내가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던 부족한 모습만 보이며 나 자신으로부터 신용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최선보다는 최악을 먼저 상상하고 그것이 불안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이 불안의 실체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근래 들어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불안이다. 내가 욕망하는 나의 모습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나.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에게 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사랑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것들, 가족이든, 영화든, 영화 비평이든, 그들에게는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직 사랑 이외에 줄 수 없는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것을 어려운 일이다. 그런 나에게 어떤 미래가 닥쳐왔을 때 과연 내가 그 미래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서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비평에 삶을 바치고자 하지만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다면 나는 언제든지 버림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 때 나는 나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영화와 비평이 나를 버려도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내가 무능하고 무가치한 탓이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증오하기만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여정은 그런 나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주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영화 비평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 영화에 관한 여러 이론을 알고 있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런 나를 보며 영화 안에 갇혀 살지 않을 것을 언제나 조언했다. 그 조언을 듣고서야 나는 내 좁은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사실. 영화는 결국 세상에 대한 가능성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비평을 하는 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태도 중 하나는 영화를 세상의 전부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을 경계하면서도 어느 순간 내가 그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영화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마주하면서 세계에 대한 나의 감각을 넓히는 데 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 여정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긴 여정이 될지는 모른다. 어쩌면 원하는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하고 일찍 돌아올지도 모른다. 나아가는 동안 여러 번 좌절하고 절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여정 동안에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우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서 더 좋은 인간으로서, 더 나은 글을 통해 당신과 만나고자 한다. 당신이 행운을 빌어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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