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상하리만큼 무기력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도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요즘만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기력함은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단순히 글을 쓰지 못할 정도를 넘어서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화를 볼 수도 없었고 글을 쓰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군 전역 이후 다시는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정신과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잠을 청하고 있다. 내 앞에 놓인 삶이 불안한 것을 넘어 두려웠다.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그냥 두었다가는 이 무기력함이 완전히 내 일상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나는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그건 아마 내 스스로 나의 가치와 의미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고 가치 있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무가치한 사람으로 기억될 때 그것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나는 무관심은 신경 안 쓰지만 무가치함은 못 견디는 편이다). 어찌 보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나의 인정투쟁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 혹은 영화가 나를 필요로 하고 비평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단순히 직업적인 문제나 생계의 문제를 넘어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가 스스로에게 던졌다는 질문. “나는 영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도 나를 필요로 하는가?“ 나는 그 질문을 똑같이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를 괴롭게 했다. 앙겔로플로스가 영화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존재 가치를 증명한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내가 영화 앞에서, 영화 비평 앞에서, 그리고 나와 같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절망. 무가치하다는 고통. 나름대로 오랫동안 비평을 써왔지만 여전히 내 비평에는 부족한 점만이 가득하고 나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곧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영화 이외에 내가 잘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내 스스로 잘한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걸 깨달은 이후 단순히 삶이 불안한 것을 넘어 두려워졌다. 내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결국 영화를 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정말 이 거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되어 귀중한 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가기만 할 것만 같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무작정 영화 한 편을 틀었다. 무언가 봐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순간 어떤 안도감을 나를 감싸 안았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안도감. 혹은 영화가 나를 보고 있다는 위로. 마침내 내 존재를 느끼는 순간. 모두가 아는 사실. 영화는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영화가 나를 개의치 않고 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영화가 나를 품어주고 함께 있어주는 듯한 위안. 그래서 내게 있어 영화의 멈추지 않는 성질은 나의 시간을 무의미하지 않게 해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 나는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단순히 영화가 훌륭해서가 아닌 나의 삶 자체를 긍정하면서 향유할 수 있는 기쁨. 누가 보더라도 무가치하게 보이는 나를, 나 자신에게조차 증오받는 나를 받아들여주고 의미 있다고 말해줄 때 비로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영화를 너무 사랑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영화는 나를 매번 허무와 권태로부터 구원해 주고 내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지만 정작 나는 영화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영화를 위해, 혹은 영화 비평을 위해,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해 매번 좋은 글을 쓰고자 하지만 언제나 부족함만을 느낀다. 나는 영화에게 준 것이 없는데 영화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준다. 분명 영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거리낌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고 품 안으로 안아준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 어쩌면 이건 영화뿐만이 아닌 내 주변의 수많은 은인들에게 가지는 감정일 것이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혹은 간혹 만나는 지인이든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데 나는 그들에게 주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한 편으로는 미안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고맙다. 아마 지금 내가 무가치한 존재라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영화에게, 내 은인들에게 염치없다는 사실을 잠시 무릅쓰고 미안하다는 말 대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낼 때까지.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이 나에게 준 만큼, 혹은 일부라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래서 이 글의 마지막은 당신에게, 영화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다시 한번 앙겔로플로스의 질문을 조금 바꿔서) 던지고 싶은 질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제가 필요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