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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Feb 13. 2023

이해하는 힘

영화는 정말 대중예술일까?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자주 가는 극장에서 샬롯 웰스의 <애프터 썬>을 관람했다. 영화 자체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옆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잘 들어보니 옆자리에 앉은 관객이 계속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후에는 그저 무시하려고 했지만 정말 나를 짜증 나게 만들었던 것은 말의 내용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옆자리에 앉은 관객은 영화에 대해서 조용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영화야.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어야 돼. 진짜 괜히 보러 왔네."(대략적인 내용일 뿐 정확한 문장 자체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이 불평불만에 나는 즉각 제지를 하고 싶었지만 괜히 감정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상황을 현실에서도 간혹 겪었지만 아무래도 온라인상에서 더 자주 보는 것은 사실이다. 어려운 영화, 특히 소위 예술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떤 관객들은 이러한 불만을 쏟아낸다. "도대체 이런 영화는 왜 만드는 거야? 영화는 대중예술이야.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해. 저렇게 혼자만의 자의식에 빠져 만든 영화는 있어 보이는 빈 껍데기에 불과해."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즉각 반박하고 싶어 진다. 도대체 영화가 당신을 이해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당신이 한 작품에 대해서 스토리텔링의 실패, 미학적 방법론의 실패, 혹은 윤리적 실패를 지적한다면 의견이 다르더라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영화를 폄하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당신이 영화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영화는 당신을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 차이밍량은 영화를 보는 것은 독서만큼이나 큰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사를 거치며 영화에 대하여 수많은 암묵적인 규칙들과 관습들이 생겨났지만 관객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규칙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은 곧 자신이 영화에 대한 소비자이고 그렇기에 맹목적인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그래도 영화가 대중예술이라는 사실은 불변하지 않는가?" 나는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영화가 대중예술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영화가 다른 예술 분야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만일 영화가 대중예술이라면 그 반대편, 엘리트 예술에 속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나 미술이나 클래식 음악은 대중을 개의치 않는 엘리트 예술인가? 전 세계 어디에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대중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중의 범주는 달라졌을지 언정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작품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나에게 있어 대중예술이라는 표식은 단지 자신의 이익을 회수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에 불과하다. 영화사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들,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룬,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피터 잭슨, 혹은 마블이나 디즈니의 성공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자신을 좋아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두 가지 표현은 완전히 다른 표현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대중의 기호에 맞는 영화를 생산한 것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업적 독창성은 이해하면서 예술 영화가 독창성을 지닐 때는 엘리트적 자의식에 빠져있다는 비판은 내게 있어 모순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는 지나치게 편협하고 독선적인 일부 시네필의 책임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영화에 책임전가하는 것은 잘못됐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무지 자체는 죄가 아니다. 이건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이다. 모르면 알려주고 함께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무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만 한다면  사이의 간극은 완화될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상대방의 무지에 대해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부 시네필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이전에 시네마와 테마파크가 가지는 서로 다른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영역은 상충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시네마의 잣대로 테마파크를 판단할 , 반대로 테마파크의 잣대로 시네마를 판단할  마주하는 것은 좁힐  없는 간극뿐이다. 각자가 지니는 가치가 다르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지니는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있어야 한다. (이전에도 분명히 말했던) 이해 이전의 존중. 이것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타인을 대할  필요한 태도이다. 있는 그대로 타인을 존중하기.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번이고 되돌아와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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