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헛되지 않기를
“왜 영화를 보나요?” 언제나 나에게 풀어야 할 과제처럼 남아있는 질문. 혹은 시네필이라면 누구나 견뎌내야만 하는 질문. 아마 이 질문은 영화가 세계 앞에서 지니는 존재론적 의미에 관한 질문일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오로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 안에서 이 물음에 답해 나가고 싶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SNS를 하던 중 이런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잠을 늦게까지 자지 않는 사람은 그날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보는 순간 적어도 이 이론이 정확하게 나를 설명하고 있음을 순간 깨달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소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과는 많이 멀어졌다. 그때 당시에는 물론 학업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었으나 대학에 입학하며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진 이후에도 나의 생활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늦으면 새벽 5시에서 6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무언가를 붙잡고 늘어졌고 그러다 지쳐 잠이 들면 오후 늦게나 일어나고는 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이런 생활 패턴에 대해 걱정했고 나 역시 그런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 습관은 몸에 박혀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강박이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 잠에 드는 시간을 최대한 유예시켜야 할 것 같은 강박. 거기에는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흐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지금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사용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러면서 하루가 허무하게 흘러간 것 같으면 이상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감정에 빠질 때면 잠에 들기를 거부하면서 그 시간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에 뒤늦게 무언가를 시작했다. 그래서 새벽이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이 강박은 군대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무래도 좀 더 규칙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리라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오히려 군대에 입대한 후 주어진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더 심해졌다. 그건 사회에서 내가 해오던 일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기도 하지만 군대에서의 시간이 훗날에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휴가를 나오기만 하면 사회에서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원상태로 복귀한다. 나도 이 강박에는 비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작하면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찍 일어나는 날이 있어도 결국 새벽까지 잠을 못 자는 강박을 고칠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내 안 좋은 생활 패턴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새벽의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내 취향도 설명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새벽이 아니면 생중계로 볼 수 없는 유럽 축구와 메이저리그 같은 스포츠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어찌 보면 내가 스포츠를 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설명이 될 것이다. 당연히도 처음에는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열정으로 경기를 챙겨보았고 지금도 가장 큰 동기인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새벽 시간대에 스포츠를 곁에 두었을 때 이상한 안도감이 느끼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을 절대 허투루 보내고 있지 않다는 증거. 나는 지금 영화를, 스포츠를 보고 있기에 절대 이 시간이 쓸모없이 지나간 게 아니야. 이건 분명히 내 삶에 자양분이 될 거야. 이런 믿음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더 많은 경기를 챙겨보고 수많은 분석 글과 유튜브 영상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는 것 또한 그렇게 나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왜 많고 많은 것들 중 영화를 선택했나요?" 물론 나는 여러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그중 하나만 말하자면 "영화는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 내가 영화를 쫓아가지 못하더라도 스크린 속 이미지들은 자신의 시간에 나타나고 사라진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나는 눈앞에서 흘러가는 영화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책을 읽을 때도 20분 이상 읽으면 오래 읽는 편이고 글을 쓸 때조차 중간중간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컨디션만 좋으면 연속해서 여러 편을 볼 수 있다. 그건 고맙게도 영화가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를 강제로라도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영화 속에 담긴 수많은 요소들을 발견하고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일 것이다. 내가 경기를 따라가던 말던 선수들은 자신들의 경기를 끝날 때까지 지속한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 이미지의 물결을 타고 떠내려 가는 것이 전부이다. 만약 이걸 보고 누군가가 "그럼 당신은 자신의 게으름을 둔갑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건가요?"라고 묻는다면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영화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시간을 채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더 주체적이며 가치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나라는 개인이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서는 영화가 가장 좋은 방법일 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최근에는 영화를 보는 것이 열의를 넘어 하나의 강박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단순히 더 많은 영화를 보고자 하는 시네필의 욕심은 아니다(물론 그런 것이 없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하는 강박. 나는 영화를 통해 흘러가는 하루를 붙잡고 늘어진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지나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과 강박이 하찮게 보이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단 오늘은, 내일은 영화로 하루를 채워야만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이 불안과 강박을 극복하는 법을 불행히도 아직은 알지 못한다. 다시 한번. 나는 영화를 통해 오늘 하루를 붙잡고 늘어진다(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