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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Feb 10. 2023

노견의 미용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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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에 작성 한 글




4년 전 참치(우리 집 강아지)의 슬개골탈구로 인해 병원을 알아보던 중 인연이 닿아 계속 다니던 병원이 있다.

그곳에서 미용도 믿고 맡겼는데 올 초 급작스럽게 미용선생님이 그만두었고 그사이 14살이 된 참치는

미용을 받아주는 곳을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미용을 계속하지 못해 어느새 우리 강아지는 엄청난 털복숭이가 되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급해져 다른 미용원에 전화를 돌려도 어디서든 노견은 힘들다, 동의서를 써야 한다.라는 말들 뿐이었다. 수화기를 통해 나이가 많아 거절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서글퍼졌다. 계속 같은 미용실만 다녔기에 노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거절당할 줄 몰라서 좀 당혹스럽기도 했다. 참치를 통해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는 나는 노견은 미용을 맡기는 것부터 이렇게나 어렵다는 것 또한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늙으면 참 서글프다. 그치?


결국 미용 맡기는 것은 포기하고 셀프미용을 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내 유튜브는 온통 애견미용, 요크셔미용, 노견미용 등으로 검색어를 장악했고 마음만은 벌써부터 노련한 애견미용사가 되었다.

제일 먼저 주문한 가위와 바리깡이 도착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은근히 예민한 우리 참치를 내가 잘 달래며 미용할 수 있을까 사실은 너무나 무서웠지만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근두근 첫 미용 시작.

손과 심장이 나도 모르게 벌벌 떨렸고 바리깡으로 첫 발을 힘차게 내딛었는데

아뿔싸. 머리부터 꼬리까지 고속도로를 내어버렸다.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그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어쨌든 시작했으니 어찌어찌 끝은 맺었지만 누가 봐도 쥐 파먹은 네모얼굴이 된 참치.

남편 말로는 참치가 거울 볼 줄 알았으면 이거 당장 환불감이라고 말했고 내가 봐도 참치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쨌든 털은 다시 자라니까 좀만 참자고 참치를 다독이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시간은 흘러 발바닥 털이 무성해져 걸을 때 자꾸만 미끄러져서 또다시 바리깡을 집어 들었다.

그사이 유튜브로 독학도 더 열심히 했고 다방면으로 만발의 준비를 해 이번엔 고속도로는 면했다.

그리고 참치도 나를 좀 믿는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약간 자만했나 보다. 정말 눈 깜짝하는 순간 허벅다리의 야들야들한 살을 바리깡으로 찝어버렸다.

낑! 하면서 날뛰는 참치와 다시 손이 벌벌 떨리는 나.

얼른 약국으로 달려가 소독약을 사 왔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상처에 약을 들이부으며 마음으로 울었다.

남들은 참 쉽게 하던데 우리는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대로는 노년에 얘랑 나랑 너무 데면데면해질 것만 같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결국 몸통털이 길어져도 조금 흐린 눈을 하며 못 본 척했고 그나마 발바닥 털만 대충 깎는데 이마저도 안 하던 입질을 하려는 참치를 보고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애견미용 검색에 나섰다.


근무날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으며 다시 한번 노견미용, ㅇㅈㅂ(당시 살았던 지역의 초성이다) 노견미용 검색에 나섰다. 전날 밤 몇 군데 검색을 끝내서 전화만 돌리면 되는데 이미 거절의 맛을 보았기에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그 와중에 햄버거는 왜 이렇게 맛있담?


첫 번째로 집 근처 골목에 있는 애견샵에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가자 괜히 더 두근거리는 심장, 여보세요? 하는 소리에 혹시 노견 미용도 하시나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10살 넘은 애들은 원래 하던 애들 아니면 안 해요.라는 차가운 말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노견도 미용을 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당연히 될 줄 알았던 곳이여서 실망감이 더 컸다.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다시 한번 다른 곳에 전화를 돌렸다. 신호가 가는 도중 이제는 두근거림보다는 제발 허락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10살 넘은 강아지도 미용을 하는지 여쭤보았다. 그리고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원래 미용을 하던 애다. 그런데 그쪽 선생님이 그만둬서 미용할 곳을 찾는 거다 등등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했다. 내 절박함을 좀 알리고 싶었다. 상대는 좀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노견은 오천 원 추가비용과 동의서를 쓴 후 미용을 진행한다고 안내해 주었다.

세상에 미용이 가능하다면 그깟 오천 원 추가비용이 다 뭐람. 당장에 예약날짜를 잡았고 한 짐 덜어낸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동의서까지 써가며 미용을 맡겨야 하나 싶었지만 몇 개월간 미용으로 씨름을 하던 우리 사이를 회복할 수 있다면 동의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드디어 미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내 미용 가는 날, 쓸데없이 비장한 마음으로 참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샵에 도착해서 작성해야 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써내려 나가는데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죄송합니다... 참치 나이 한 살 속였어요. 왠지 14살은 너무 많아 더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한 살 속였습니다...

동의서를 작성하고 미용을 하기위해 참치를 건네어드리는데 선생님께서 혹시나 미용하다가 입질을 하거나 너무 힘들어하면 중간에 못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덜컥 겁이 나 내가 안 보이면 선생님 말씀 잘 들을 거라고 원래 그랬다고 구질구질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참치를 건네어드렸다.

샵은 유리로 뻥 뚫린 곳이라 내가 보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보이면 자기편이 있다는 생각에 혹시나 선생님께 입질을 할 것 같아 도망치듯 샵을 빠져나와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곳에 앉아 샌드위치와 오늘의 커피를 한 잔 시켜두고 기다리는 동안 읽으려고 챙겨간 책을 펼쳤지만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혹시나 입질한다고, 힘들게 해서 못하겠다고 전화가 올까 계속 조마조마한 마음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샌드위치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30여분 지나자 그제야 잘하고 있나 보다 안도감이 들어 커피를 몇 모금 홀짝 들이마셨다.

그리고 정확히 샵에서 나온 지 50분쯤 지났을때 샵에서 전화가 왔다. 미용은 잘 끝내고 마무리단계이니 데리러 와도 좋다는말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도 한 톤 업되어 고맙습니다를 연신 외쳤다.

그리고 샵에 도착해 오랜만에 제대로 된 미용을 끝내고 빡빡이가 된 참치를 보자 괜히 울컥했다.

너도 힘들었겠지. 의젓하게 꾹 참고 시원하게 빡빡 밀려진 참치가 대견하고 장했다. 그리고 드디어 정착할 수 있는 미용실이 생긴 게 기뻤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서글픈데 강아지라고 다를쏘냐...

늙으면 뭐든 참 서럽다. 앞으로 더 서러울 일들이 많을 것이다. 그저 다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렸다ㅠㅠ
가위로 오린듯한 삐뚤빼뚤 네모얼굴,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더 귀엽습니다




지난해 겨울 오래 함께 했던 우리 강아지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갔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려 글로 적어 내려 가기가 쉽지 않지만 휘발되는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새로운 폴더를 만들었다. 폴더를 만들고 나니 참치가 우리 집에 온 것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글을 적어야하나 싶어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글이 미루어져 이러다 결국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 따위는 괘념치말고 그저 무엇이든 적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첫 글로 지난 2020년 11월 블로그에 적어둔 글을 옮겨와 조금 다듬어 올려본다.

앞으로도 시간순의 글은 아닐 것이다. 그저 노견과 함께하며 기쁘고 슬펐던 여러 날들을 기억하고 싶어 적고 또 적을 뿐이다. 그리고 나 아닌 누군가 우리 강아지를 기억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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