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는 길다면 긴 육일 간의 휴일이 주어졌다. 평소에도 출퇴근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긴 연휴에 큰 감흥은 없었지만 직장인과 함께 살고 있기에 6일간의 거저 생긴 휴가에 신나 하는 직장인 남편을 보며 덩달아 들떴다. 이렇게 긴 연휴 중에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한강에서 자전거 타기이다.
참치가 무척이나 아팠던 작년 초여름즈음 양가 부모님의 집에서 참치가 보살핌을 받고 있어 주말이면 늘 부지런히 참치가 있는 의정부로 향했다. 참치를 보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아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도 누워서 온몸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참치를 보고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분전환이 절실했던 우리는 한강으로 향했다. 보통 한강에 가면 의자를 펴놓고 흘러가는 강물과 남산타워를 보며 라면을 먹거나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게 전부였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여름의 시작이라 날씨도 생각보다 덥지 않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자전거를 타기 딱 좋은 날이었다. 로드바이크를 취미로 갖고 있는 남편은 본인의 자전거를 차에 싣고 복장까지 갖춰 입고는 한강에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자전거는 있지만 한동안 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고 접을 수 있는 자전거임에도 접는 법을 몰라 그냥 빌려 타자 싶어 맨몸으로 집을 나섰다. 차가 막히지 않아 금방 반포한강에 도착하였고 따릉이 대여소를 찾지 못해 사설 자전거 대여소에서 다 쓰러져가는 자전거를 두 시간 대여했다. 로드바이크는 속력을 즐기는 자전거이지만 덜컹거리는 내 일반 자전거로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남편은 평소보다 천천히 내 앞에 섰다. 남편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함께 한강길을 따라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대여한 자전거에 금방 익숙해지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바람이 느껴진다. 참치가 아프고 몇 개월을 함께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마음이 그 순간만큼은 싹 잊혔다. 아니 잊혔다기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괜찮아진 것이 없는데 꼭 다 괜찮아질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두발을 구르며 천천히 바뀌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살랑이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정말 다 괜찮은 것만 같았다. 계속되는 병원행과 나아지지 않는 참치를 보며 속으로 울었던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꼈다. 30분쯤 타니 잠실이 가까워졌고 편의점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빨리 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발을 구르는 기분이 좋아 그런지 어느새 생각보다 멀리 나와있었다. 편의점에서 물을 하나 사서 노나 마시며 살짝 난 땀을 식히고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다시 자전거 대여소까지 가기 위해 다시 한번 자전거에 올라 발을 굴렀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 길인데 똑같은 길이 돌아갈 때 보는 풍경은 새삼 또 달라 보였다. 돌아가는 방향으로는 정면에 좋아하는 남산타워가 보이고 때마침 뉘엿뉘엿해가지고 주황빛 노을이 고요하게 일렁이는 한강을 물들인다. 그 모습을 보며 자전거 페달을 구르다 보니 어쩐지 벅찬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잠시 옆쪽에 자전거를 대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남겼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며 날이 좋을 때 자주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자고 말했지만 일 년이 조금 넘는 지금까지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자전거를 타러 한강에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날이 나에게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각인이 되어있는지 긴 연휴가 주어진 이번 추석에는 꼭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위로받을 일이 있는 것도, 마음에 털어낼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게 하고 싶었다. 추석에는 부모님들을 뵈러 다녀오고 또 그다음 날은 날씨가 궂어 한강에 가지 않았다. 마침내 시월의 첫날 그러니까 연휴 네 번째 날, 날씨도 좋고 별다른 일정도 없어 이때다 싶어 오늘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남편의 자전거는 며칠 전 타이어가 펑크나 수리를 맡겨둔 상태라 이번에는 둘 다 자전거를 대여하기로 했다. 긴 연휴 때문인지 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 이번에도 막히지 않고 수월하게 한강에 도착했다. 익숙한 대여소로 향해 자전거를 빌리려는데 일 년 새에 자전거를 싹 바꾸었는지 한눈에 보기에도 새것 같은 자전거들이 대여하는 사람들과 반납하는 사람들의 손에 오가고 있었다. 키오스크로 바뀐 기계에서 바구니자전거 두대를 90분 대여하고 적당한 자전거를 골라잡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지난번과 같은 길을 나섰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대여한 자전거에 익숙해지자 바람이 느껴지고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 년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두 발로 자전거 페달을 구르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입에서는 그저 행복하고 기분 좋다는 말만 되뇌어졌다. 이번에도 코스는 똑같았다. 30여분 자전거를 타고 그때와 같은 편의점에서 물을 하나 사 땀을 식히고 다시 되돌아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에는 참치가 많이 아팠지만 곁에 있었고 일 년이 더 지난 지금은 아픈 참치가 이제는 곁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한강에 오면 날이 좋을 때 한강에서 참치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진해져 여전히 그립고 슬픈 마음이다. 이 마음이 일 년이 다 되어가니 좀 괜찮아졌을 줄 알았지만 한강에 도착해 뛰노는 많은 강아지들을 보니 그리움이 짙어져 조금 슬프기도 하였다. 나뿐 아니라 남편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거실에 앉아있는 나에게 '사실은 나 오늘 좀 가기 싫었어'라고 말하는 남편. 내가 한강에 가자고 할 때부터 별로 내켜하지 않는 걸 알았음에도 가고 싶어서 짐짓 그 마음을 모르는척하며 집을 나섰었다. 그저 피곤하고 본인 자전거가 없어 그런 줄로만 생각했는데 한강에 가면 참치가 너무 많이 보고 싶어 져 슬프다는 말을 하는 남편. 그래도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싱그러운 풍경을 보며 땀을 내니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말한다.
사랑하는 참치를 떠나보내고 '이때쯤이면 시간이 좀 지났으니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괜찮은 건 아직 없다. 늘 우리가 틀렸다. 나는 이제 괜찮아지길 바라기보다 한 번씩 깊은 슬픔이 밀려올 때 그 슬픔을 오롯이 내 몫으로 감당하는 걸 택했다. 내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의 솔로곡 중에 bicycle이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의 가사 중 '슬프면 자전거를 타자'라는 구절이 나온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많이 듣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마음에 와닿은 적은 없었다. 자전거를 탈 때 이어폰을 끼면 위험해서 노래를 듣진 않았지만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왜인지 자꾸만 이 노래가 생각났다. 남준(rm)이 어떤 마음으로 이 가사를 쓴 건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날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한강에 가 자전거를 탈것이다. 우리는 또 슬프겠지만 슬픔은 슬픔으로 남겨둘 것이다. 그 슬픔 속에서 참치를 향한 여전한 우리의 사랑을 느끼며.
Bicycle / RM
두 발을 구르며
볼 수 없는 그댈 마주해
언제나처럼 날
맞아주는 몇 센치의 떨림
I wanna keep the bass down low
벌써 내 마음은 주말 mode
I don't see no open cars, no open bars
나쁘지 않아 온전히 혼자인 road
섬처럼 떠있는 사람들의 마음
어쩌면 오지 않을 듯한 밤
지평선을 걸어가 또 굴러가
우리가 정한 저 소실점으로
슬프면 자전거를 타자
바람을 두 발 아래 두자
오 자전거를 타자
두 팔을 자유로이 벌리며
가끔은 굴러가게 둬
자전거 바퀴처럼
찾을 게 있어
오후의 간식처럼
이 작은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아
두 바퀴 위에선 다 사사로운 한낮의 꿈
Feel the roof, smell the truth
멀지 않아 기적은
어떤 얼굴을 해도 지금은 괜찮아
진짜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땅에서 발을 떼
저 새를 닮은 태
섬처럼 떠있기로 해
바람을 따라 춤춰
Yeah 울어도 돼
원래 행복하면 슬퍼
슬프면 자전거를 타자
바람을 두 발 아래 두자
오 자전거를 타자
두 팔을 자유로이 벌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