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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Jan 29. 2024

나 홀로 여행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둘째 주에 해외여행 일정이 있었다. 급작스럽게 잡은 것은 아니었고 지난해 7월 케세이퍼시픽에서 홍콩항공권이 1+1으로 나와 친척언니와 함께 가려고 진작부터 계획해 둔 여행이었다. (물론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한 게 전부였지만) 새해 첫날이 지나고 1월 2일 아침 운동을 다녀오던 중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슬슬 여행 계획과 미리 구매해야 할 티켓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반갑게 받은 나와는 달리언니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혹시 누가 돌아가셨나? 별별 생각을 하며 통화를 이어가던 중 언니가 12월 마지막날 빙판길에 살짝 넘어졌는데 계속 아파 병원에 가보니 다리가 부러져 지금 큰 병원에 와 진료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너무 놀라  괜찮냐고 물었고 그 후에 우리 여행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생각이 다가왔다. 진료 후에 다시 통화를 하기로 하고 전화를 기다렸다. 그래도 별일 아니겠지 싶었는데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언니는 수술을 해야 했고 아무래도 여행은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의 발이 걱정도 되었지만 당장 일주일 남은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걱정되었다.


 살면서 한 번쯤 해외여행을 혼자 하고 싶은 로망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중에 엄마와 통화를 했고 이러저러해서 다 취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엄마랑 갈래?라고 말했지만 이미 엄마와 몇 년 전에 홍콩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다시는 홍콩엔 오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엄마였기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냥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통화를 종료했고 사실은 정말로 취소할 마음이었다. 항공사와 호텔에 연락해 각자 취소방법을 알아보았다. 여행을 일주일 남긴 시점이기에 호텔은 당연히 취소불가였고 취소한다 해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호텔비를 몽땅 날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러저러 사정이 생겨 동행인의 수술로 인해 못 갈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어쩔 수 없다는 기계적인 답변뿐이었다. 이렇게 되니 돈을 공중에 날리느리 까짓 거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어. 그냥 혼자 가봐?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홍콩은 다녀온 지 좀 되었지만 이미 세 번이나 방문했던 도시였고 휴양지가 아니기에 혼자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유튜브에 '여자혼자 홍콩여행'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며 다른 사람이 찍은 최근의 풍경들을 보니 또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혼자는 절대 못할 것 같았지만 혼자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의 영상을 보다 보니 혼자 여행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은 생각이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혼자 여행을 가리라 결정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로망을 실현하게 될 줄 몰랐기에 혼자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계속해서 떨렸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취소하지 않고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전했고 엄마는 내게 뜻밖의 말을 하였다. 사실은 언니가 다쳐서 다 취소하게 됐다고 처음에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 혼자 한번 가보라고 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미 취소를 결정한 너에게 또 엄마가 말을 보태면 네가 싫어할게 분명해 그냥 입을 닫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잘 결정했다고, 분명히 큰 경험이 될 거라는 말을 내게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니~ 진작에 그렇게 말해주지이.'라고 대답했지만 나도 나를 안다. 아마 그 당시 나에게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아 혼자 가긴 몰 혼자가 라고 소리를 빽 지르며 짜증을 냈을게 뻔했다.

사실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부터 혼자 간다고 하면 분명 위험한데 왜 혼자 가느냐는 말을 먼저 하겠거니 생각했기에 엄마가 내게 해준 답변이 너무나 의외였고 이 예상밖의 답변이 내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일주일 동안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했고 지금은 무탈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글을 쓴다. 우려와 달리 엄마 말대로 오히려 혼자 한 여행으로 얻은 게 더 많았다.

가서는 매일매일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다. (물론 함께 가지 못한 언니와 혼자 있는 남편과도 매일 영상통화를 하였다.) 이미 결혼한 지 8년 차로 엄마와 떨어져 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홍콩에서는 어쩐지 계속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아름답게 노을 지는 야경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정을 끝내고 호텔에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며 자주 엄마와 연락하고 영상통화를 하였다. 평소 엄마와 영상통화는커녕 전화도 잘하지 않고 카톡만 간간히 주고받는 편인데 무엇이 이렇게 애틋하게 만들었는지 참 이상하지. 여행 내내 엄마가 내게 해준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며 가족에게 받는 응원과 힘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이런 거라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번 혼자 한 여행을 통해 시작도 전에 두려움이 커 늘 주저하던 내가 두려움은 조금 내려놓고 무엇이든 거침없이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이를 먹어도 새롭게 배울 것과 느낄 것이 이렇게나 많다. 올해의 이 기분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남겨둔다. 그러면 올해는 정말로 무엇이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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