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1시간 동안 눈물 콧물 다 쏟다
병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지 딱 두 달이 지났습니다.
사실 복귀하자마자 바로 휴직을 신청할 생각이었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위한 자료도 이미 모아둔 상태였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또 다시’ 열심히 일만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돌을 던지세요… 저도 이런 제 모습이 싫어요. ㅠㅠ)
처음 자리로 돌아왔을 때 팀 사람들은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 냉랭했습니다.
‘왜 왔냐’는 기색도 숨기지 않았죠.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전문가’가 대행했다는 제 업무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사람은 싫어도 일은 늘 애정을 갖고 해왔던 터라, 그 뒷수습을 하는 데 두 달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그리고 이틀 전 목요일,
저는 국장님실 옆 휴게실에서 자존심이고 뭐고 내려놓고 한 시간 동안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복귀 첫날부터 그들은 제게 아무 협의도 없던 새로운 업무분장표를 던졌습니다.
원래 제 업무가 아니었던 자잘한 일들을 자신들의 성과를 위한 ‘손발’처럼 얹어놓았고,
그 과정에서 저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습니다.
심지어 제 사업과 관련된 업무도 공유해주지 않았어요.
제가 알게 되면 공로를 가져갈까 두려웠던 걸까요?
그래서 저도 그냥 묵묵히 제 할 일만 했습니다.
다행히 협력업체와 다른 팀의 좋은 분들이 큰 의지가 되어주었죠.
감기를 숨길 수 없듯, ‘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돌아온 뒤 사업이 순식간에 안정되고 순풍에 돛을 단 듯 굴러가자,
윗분들은 매우 만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그들'과의 비교도 이루어졌겠죠.
팀장을 포함한 무리는 위기감을 느끼기 충분했을 겁니다.
그래도 서로 자기 일만 열심히 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요.
하지만 지난 목요일, 사건이 터졌습니다.
목요일 아침, 무리 중 한 명이 제게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자료가 협력업체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오후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필요하다”는 말에 저는 들은 바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중요한 정보를 저와 공유하지 않아요.
그런데 전체 과회의에서 말했다며, 몇 시까지 가져오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생각해보면 문제점은 명확했어요.
1.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전날부터 자료를 챙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2.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담당자인 저에게 최소한 쪽지라도 보내 상기시켰어야 한다.
3. 언성을 높일 게 아니라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모든 선택지를 버리고 평소의 순한 양같은 가면을 벗어던진채 소리 지르기를 선택했지요.
처음 겪는 황당한 상황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휴게실로 뛰어가자, 우리 팀과 다른 팀의 동료 한 명이 각각 따라와 줬습니다.
저는 한 시간 동안 숨이 넘어갈 정도로 눈물 콧물을 쏙 빼며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치욕과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어요.
그 남자 직원은 구부정한 자세에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일부) 사람을 대합니다.
겉으로 보면 약하고 순해 보이죠.
하지만 제가 본 그의 진짜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저처럼 약자라 생각되는 대상이나, 외부 업체·기관에는 헐크처럼 돌변합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갑질을 행사해, 그동안 제가 관계를 복구하러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도 위선을 감출 수 있습니다.
겉모습이 약해 보인다고 약자인 건 아니더군요.
주변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에 대신 전화도 해주었습니다. 담당자가 부재라 연결되진 않았지만요.
마음 같아선 당장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명존쎄’라도 날리고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저는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신문 마감이었고요. (네, 저는 뼛속까지 노예근성이에요)
실컷 울고 사무실로 돌아가 급한 일을 처리하고, 팀장에게 보고한 뒤 바로 외근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내내 신문을 완성했습니다.
주윗사람들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울더니 민트초코 먹고 기분 좋아져서 다시 일한다고요? 코미디 아니에요?”
하지만 인생은 원래 다 그런것 아닌가요. 남이 보면 희극, 겪는 사람은 비극.
아무리 비극이라도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하니까.
맡은 일은 끝내야 하니까.
다음날 저는 완성된 신문을 들고 정상 출근했고, 윗분들에게 결재를 받았습니다.
결과물만 봐도 저울추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어요.
사건을 잘 모르는 팀 내 한 선임 직원은 오히려 제가 너무한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거죠.
팀장과 그 무리는 작은 체구, 상냥한 얼굴, 조용한 목소리로 무장해 있습니다.
반면 저는 키가 크고 자세가 바르며,
어려서부터 똑부러지는 말투 때문에 ‘도도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 외형 때문에 남들 눈에는 제가 ‘가해자’처럼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볼까요?
- 지금도 병원에 다니고 있고, 보기 가여울 정도로 살이 쏙 빠진 사람도 ‘나’
(지하철을 타면 자꾸 아주머니들이 '아가씨 저기 자리 있어~'라며 권유하세요. 곧 내리는데...)
- 일을 몇 배나 더 많이 하고 있는 것도 ‘나’
- 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도 ‘나’
- 실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도 ‘나’
정말 웃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중국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 그에게 선할 것을 강요하지 말라.
종종 가장 나쁜 사람들은 실상을 모르며 너에게 선을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약해 보인다고 약자가 아니고, 크고 당당해 보인다고 강자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약한 척 하는 사람들일수록 정작 자신이 ‘약자’라 생각하는 이들 앞에서는
얼마나 고압적이고 위선적으로 변하는지 저는 똑똑히 봐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커먼 속은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포장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