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옛날엔 안 그랬잖아!

이제 참으라는 아빠 vs 이제 못 참겠다는 딸

by 강호연정

어제 부모님이 집에 왔습니다.

입이 가벼운 저는 지난주 회사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내 딸이 이런 일 당했으면 가만 안 둔다”

고 한 말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내심 기대했죠.

“가서 주 패삐까!”


우리 집안은 엄마, 아빠, 저까지 3인이 모두 다혈질.

불의는 못 참고, 오지랖은 넓고, 팔은 안으로 굽고…

음… 조금 과도할 정도로 매우 굽는 편이에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학교에는 묘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가면 선배 언니들이 마음에 안 들면 때린다더라.

**이는 선배 언니들한테 빰을 맞은 적이 있다더라.

화장실에 끌고 가서 맞은 사람도 있다더라.


지금 생각하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어이없는 공포였죠.


중학생 언니들은 학원 다니느라 녹초였는데

꼬맹이 후배들한테 관심이나 있었겠어요.


어쨌든 저 역시 그 두려움에 빠져있던 초딩 중 하나였습니다.


― 아빠: “걱정 마. 그런 못된 애들 있으면 학교로 쳐들어가서 고개도 못 들 정도로 때려줄게.”
― 엄마: “농담 아니다. 너 **오빠 있지? 불량학생들에게 맞았을 때 아빠랑 삼촌들이 다 같이 가서 버릇을 고쳐놨단다. 나중엔 오빠가 지나만 가도 불량학생들이 도망갔어.”
― 나: (왠지 든든)


그 시절의 우리 아빠는
정의감 폭발 + 가족 사랑 MAX + 팔이 안으로 거칠게 굽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아빠와 삼촌들이 총출동할만한 사건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저의 학창 시절은 평화 그 자체였지만요.


그런데!!!!

어제의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 아빠: “그래 잘 참았다. 인생은 원래 참고 사는 거야.”

― 나: (시무룩) “아빠…. 변했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거야?”


그 순간, 옆에 있던 막내 이모가 외쳤습니다.

― 이모: “어디서 그런 못된 인간이!!!”

이모의 반응과 아빠의 반응이… 뒤바뀌었습니다.


어째서 의사선생님과 우리 아빠의 반응은 제 기대와 정반대가 된 걸까요.

― 의사선생님: “잘 참았어요.” → “내 딸이 그런 일 당했으면 가만 안 둬요!”

― 아빠: “주 빼삐까!” → “인생은 참으면서 사는 거야.”


아... 무조건 팔이 안으로 굽었던, 든든했던 우리 아빠는 사라졌습니다.

왠지 언제나 내 편이던 아군을 잃은 것만 같아 저는 어제부터 마음이 심란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