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6 발송 레터 : 원래 처음은 망하는 게 당연하다
“너무 창피해서 필라테스 관둬야 하나......”
운동하러 모인 사람 중에 내가 가장 못 해서 운동을 끊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그 고민을 해본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그룹 필라테스를 무려 6개월 차가 될 때까지 교실 사람 중 필라테스를 가장 못 하는 사람이었다.
필라테스 강사님께서 운동 자세를 설명하시고 나면, 우리가 자세를 취한다. 강사님은 자세를 취하는 나를 보면, 가장 먼저 급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오시곤 하셨다. 그리고 내가 올바른 자세를 하게 하기 위해, 강사님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나게 애를 쓰셔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치 백조처럼 우아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나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온몸이 떨리는 게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내가 당기는 스프링은 내 손이 떨리는 거에 맞추어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걸 보시고 필라테스 선생님께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무게의 스프링으로 바꿔주시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더 무거운 파란색 스프링을 평안한 얼굴로 당기는데, 나는 초보용 노란색 스프링도 낑낑 애를 쓰며 겨우 당기는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운동은 재능의 영역이고, 신께서는 나에게 운동의 재능을 주지 않으셨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룸 안 회원님들의 모습
그 중에서 간단한 자세도 못하는 나
‘이 교실에서 지금 내가 가장 못 해.’
그런 생각을 새삼스레 자각하는 날에는, 수업 중에도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토요일에만 수업을 나가다가, 화-목 수업으로 요일을 바꾸었을 때였다. 그때는 그래도 필라테스를 한 지 6개월 차가 되었을 때였다. 날 처음 보신 화-목요일 담당 선생님은 낑낑대며 힘들게 자세를 취하는 나를 향해 친절히 웃는 얼굴로 다가오셨다. 그리곤 물으셨다.
“처음 오셨나요?”
차마 ‘다닌 지 6개월이 되었어요.’라고 말은 못 하고 고개를 젓자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친절한 눈웃음을 유지하며 상냥히 물어보셨다.
“그럼, 한 달? 두 달?”
결국 솔직하게 답하지는 못하고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필라테스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던 때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원에서는 새로운 선생님이 오실 때마다 인수인계 담당이 내가 되었다.-내가 가장 오래된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강사 경력이 나보다 오래된 선생님이 오시면 나는 안심하고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경력이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문제 없이 수업 잘하시겠지.’
하지만 다른 학원에서 일한 강사 경력이 나보다 오래된 선생님도, 투입 초반에는 초보적인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레벨업은 원장님과 상의해서 결정한 뒤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홈페이지에서 레벨업 알림이 떴다고 그걸 바로 학부모님께 전송해버린다거나, 1코스에서는 인문 분야 책 5권, 문학책 5권을 읽혀야 하는 게 규칙인데 아이에게 인문 책은 한 권도 주지 않고 문학책만 10권을 읽게 해서 커리큘럼이 정체되고 있거나,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너무 어려운 책을 주어서 아이를 몇 번이나 재시험을 보게 한다거나,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아이인데 레벨업을 시키지 않고 쉬운 책만 계속 주어서 부모님께 연락이 온다거나......
경력이 몇 년 차이든지 간에, 새로운 선생님이 올 때마다 실수는 꼭 일어나는 걸 보며 느꼈다.
‘아 처음에는, 원래 망하는 거구나.’
앞에 나열한 실수들도 나 역시 처음에 학원에 적응할 때 했던 실수들이었다. 서투른 나 자신을 용납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새로 올 때마다 각양각색의 실수를 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필라테스를 정말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더라도 눈감아줄 수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원은 사교육의 중심 지역의 학원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더라도 선행학습을 꽤 하고 오는 편이다. 그런데 한 햇살이가 와서 수업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비록 8살의 나이로 어리긴 했지만. 한글 자체를 제대로 못 읽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동화책의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갑니다.’라는 한 문장을 읽을 때도
나, 비, 가, 나, 풀, 나, 풀, 날, 아, 갑, 니, 다,
이런 식으로 손가락으로 짚으며 소리를 내야 겨우 읽는 수준이었다. 글자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한 문장을 따라 쓰려고 해도, 글자의 획순도 지키면서 쓰는 걸 어려워해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햇살이가 동화책을 읽을 수 있도록 옆에 앉아 함께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으며 읽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내가 글자를 읽고 쓰는 걸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글자를 읽고 쓰고, 그걸 넘어서 감상을 기록하고, 비평과 비판을 하고 타인과 토론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 시행착오를 용인해주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얼마나 더 많았을까. 햇살이를 보며 이 세상에 무엇을 하든, 그걸 처음부터 당연하게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생망? 게임처럼 다시 시작" MZ세대 마음 대변 웹소설-웹툰 인기]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914/115436027/1
최근에 웹소설을 분석하고 싶어서 몇 편을 챙겨봤다. 내가 본 웹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회귀(*미래의 내가 특정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했는데, 회귀했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공들에게는 “흑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에서 왔으니 처음에 했던 어리숙한 실수들을 하지 않고, 고생했던 일은 매끄럽게 해결해서 주변인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주인공이 장애물 없이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것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현재 독자들이 미숙하고, 실수하는 인물을 미워하고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없이 잘할 수는 없다. 어린이를 가르쳐 보니 더욱 그걸 느꼈다. 앞에서 말한 8살의 햇살이는 성실히 학원에 나오자 이제 손으로 글자를 짚지 않아도 속으로 글자를 읽고 퀴즈를 풀게 되었다. 재시험을 보는 횟수도 줄어들어 레벨업을 앞두고 있다.
해피레터를 처음 시작하면서도 실수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초기 구독자님들은 아시겠지만, 1편의 레터를 발송할 때 피드백을 받는 폼의 링크를 첨부하지 않았다. 해피레터를 첫 오픈할 때 야심 차게 만들었던 노션의 링크가 열리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준비만 했다면, 해피레터의 이야기는 구독자들에게 영원히 전해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해피레터를 작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하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해윤이는 해피레터를 어떻게 저렇게 잘 연재해나가지?’
하지만 나라고 처음부터 에세이를 잘 쓴 건 아니었다. 해피레터를 시작하기 이전에 1년 동안 블로그에서 일기를 꾸준히 썼던 시간이 있었다. 짧고 어설픈 글이어도 꾸준히 1년을 쓰다 보니, 내가 이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고 에세이 레터 연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였다. 그리고 해피레터 이전에 대학생 때 내가 주최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 100장을 혼자 캠퍼스를 누비며 붙여도 보고, SNS 관리도 해봤기 때문에 해피레터 홈페이지를 만들고 계정을 오픈하는 게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면 정말 막막하고 어렵게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년 5월 15일 구독자 30명에게 첫 레터를 보냈던 해피레터는, 1년 정도를 꾸준히 연재하자 현재 구독자가 102명이 되었다.
해피레터를 해볼 거라고 처음 엄마께 말씀드렸을 때가 있었다. 엄마께서 “구독자 100명은 돼?”라고 여쭤보셨을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일 년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히 하니, 목표로 했던 구독자님 수를 채우게 되었다.
현재 필라테스 1년 차, 이제는 룸에서 필라테스 선생님이 나에게 가장 먼저 달려오지는 않으신다. 처음 할 때 쩔쩔맸던 동작이, 두 번째, 세 번째 할수록 점점 쉬워지는 걸 느꼈다. 최근에는 체력을 더 잘 기르고 싶어 헬스를 시작하러 갔다. 헬스장에서 그룹 피티를 무료 체험으로 받았을 때, 트레이너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확실히 운동하신 티가 나시네요. 체력도 좋으신 편이고, 자세도 바로 이해하시고요.”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할 때는 기본 동작도 따라 하기 위해서 얼마나 버둥거리고, 한심하게 파닥거렸는지 알았기 때문에 트레이너님의 말에 정말 뿌듯해졌다. 그래도 필라테스를 1년을 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룹 피티 커리큘럼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고, 스쿼트나 플랭크 같은 기본 운동 자세도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었다.
헬스를 끊고 나오면서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헬스를 1년을 했을 때, 2024년의 나는 어떤 새로운 운동을 도전해볼 수 있게 될까? 그렇게 스물여덟 살이 된 나는 얼마나 운동 강도를 또 높여서 시도해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기대하고 있다.
해피레터를 1년 연재해 본 나는 또 어떤 새로운 창작물을 내 볼 수 있을까?
아무리 어설프고 부족하게 했을지라도 1년을 꾸준히 해서 만들어 놓은 기반이 있다면 새로운 도전이 좀 더 쉽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앞으로 새로운 걸 미숙하게 하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그걸 꾸준히 했을 때 미래의 나를 더 기대해보기로 했다.
이제 필라테스를 하면서, 새로 오신 지 얼마 안 된 회원님이 쩔쩔매는 걸 보면 나는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곤 한다.
‘당신이 필라테스를 못하는 게 아니에요! 처음 하는 동작이니 당연한 거예요.’
라는 속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이 레터를 읽는 구독자님들 중에서도 새로운 일을 도전하거나, 지금의 나 자신이 미숙해서 속상한 분이 있다면 꼭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처음에는 망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우리 지금의 나를 너그럽게 봐주며,
미래의 나를 기대해보자고 말이다.
Q.
처음 해 보는 일에
미숙한 나를 품어준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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