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르치는 햇살이들을 소개합니다.
1. 예쁘다고 말해 줄 타이밍
방학에 우리 학원은 매일매일 오전 독서반을 운영했다. 그 시간대 내가 담당하는 교실에는 귀여운 세 공주님들이 오곤 했다. 세 명 다 똑부러지고 야무져서 내가 속으로(*이렇게 쓴 건 그 아이들만 표현을 너무 많이 해주면 자칫 편애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참 예뻐하는 아이들이었다.
변함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 내가 고개를 숙여서 아이들을 지도하자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긴 머리카락 때문에 간지러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아 그랬어? 안 되겠다 머리를 묶어야겠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게, 그 말을 듣자마자 각자 다른 자리에 있던 세 여자 아이들이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거다. 세 명 모두 선생님 머리 묶은 모습이 궁금해서 봐야겠다는 표정이었다. 난 별 생각 없이 머리를 묶으려 했는데, 갑자기 여자 아이들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머리를 묶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서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뻘쭘해 하며 머리를 묶었다. 왜냐하면 난 별로 머리 묶은 게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머리를 다 묶자마자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선생님 예뻐요!
그러자 나머지 두 명도 마치 돌림 노래처럼 '맞아요, 예뻐요.' '예뻐요'라고 외쳐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들의 기대를 못 충족하면(?) 어쩌지'라는 노파심이 탁 하고 풀어지면서 빵 웃음이 터졌다. 사실 난 머리를 묶으면 '국민 할매'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예쁘다고 해주다니. 애초에 이 아이들은 내가 머리를 묶은 게 진짜로 잘 어울릴지, 예쁠지는 중요하지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기대되고, 그게 어떤 모습이든 '선생님 예쁘다고 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세 명 모두 날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구나.
세 아이들이 날 너무 열정적으로 쳐다보는 게, 진짜 머리 묶은 게 잘 어울리나 아닌가 하는 궁금증의 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이들은 내가 머리를 다 묶을 때까지 기다리고 예쁘다고 말해줄 타이밍을 잰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내가 언제 또 받아볼 수 있을까?
2. 선생님 이게 운전면허 세 번 도전한 게 아니면 뭐죠?
우리 반에 다니는 영재 햇살이. 나는 햇살이가 과학책을 읽고 나한테 그림을 그리며 표층이나 해구를 설명해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햇살이의 꿈은 과학자이고, 나는 햇살이가 분명 훌륭한 과학자가 될 거라 믿는다. 그런데 햇살이는 독서 편향이 너무 심해서 어려운 과학 책은 척척 읽어내면서도 인문/문학책은 너무 읽고 쓰기도 싫어한다. 이렇게 똑똑한 햇살이가 '등장인물을 칭찬해 봅시다'를 적는 나름 간단한 활동을 한 시간 내내 붙들고 있을 때도 있었다.
이날은 햇살이가 문학책을 읽고 등장인물을 칭찬해야하는 걸 적게 지도해야하는 수업이었다. 햇살이가 책을 느낀 점도 없다 하고 배운 점도 없다고 해서, 씨름하기를 한 20분. 안이가 드디어 하나를 말했다. 책의 주인공인 형이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인데 운전 면허를 세 번 도전해서 딴 걸 칭찬해주고 싶다고. 너무 좋은 대답이었지만, 이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지 확신이 안 섰다. 햇살이의 말을 듣고 형이 운전면허를 통과하는 장면을 한 다섯번은 즉석에서 읽어봤는데 그런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햇살이가 뭔가 헷갈려서 잘못 읽은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원래 쓰게 하려 했던 답안을 쓰도록 지도하게 하려 했다. 그런데 햇살이는 자기 말이 맞다면서 쓰지 않고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햇살이도 그 내용을 바로 찾아내지 못해서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 햇살이만 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 일단 그런 햇살이를 두고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햇살이가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얼마나 큰 목소리로 날 부르던지, 내가 헐레벌떡 안이 자리로 갔다. 안이는 한 페이지 속 등장인물의 대사에 손가락을 대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게 형이 운전 면허를 세 번 도전한 게 아니면 뭐죠?
너무 야무지게 말해서 그걸 듣자마자 나는 웃음이 터졌다. 알고 보니 이 책에서 운전면허 시험인 장면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었고, 후반 전개 때 형이 자기가 운전 면허를 세번 도전했다고 스쳐지나가듯이 대사로 말한 장면이 있었다. 사실을 확인한 나는 한쪽 무릎을 꿇어 햇살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햇살아 미안해. 햇살이가 꼼꼼히, 정확히 읽어줬는데 선생님이 햇살이 말을 못 믿어줬구나.
햇살이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신이 찾은 그 내용을 독서 노트에 적었다.
그날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내가 만났던 여러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어른들도 당연히 실수를 한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는 그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어른은 자주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당시 어렸던 내가 옳은 말을 한 거였고, 합당한 질문을 해도 그게 어른들의 타박으로 돌아온 적이 많았다. 물론 그때의 선생님들의 심정도 이해를 한다. 아이에게 지면 안 될 것 같고,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미안해'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려고 한다. 미안해라는 말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마법 같은 말이니까.
어른들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전해주며, 아이에게 직접 용서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그 일을 깨끗하게 잊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말.
3. 선생님, 왜 제 기분이 나쁘죠?
내 마음에 '짠'하게 들어온 햇살이가 있다. 너무나 큰 부모님의 기대 탓인지 늘 주눅이 들어있고, 뭘 시키기도 전에 '전 못해요' '몰라요'라는 말을 먼저 말하는 아이였다. 그런 햇살이를 보면 내 마음이 짠해져, 원래는 스스로 해야 하는 과정인데 내가 옆에 찰싹 붙어 햇살이의 글쓰기를 지도했다. 문제는 그렇게 되자 햇살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무조건 나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햇살이의 응석을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 것인가 고민을 슬슬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햇살이와 전자시계의 분이 9로 바뀔 때는 글쓰기를 혼자 해보자고 약속을 해 둔 상태였다. 8분이 되자 햇살이가 나한테 괜히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햇살이가 정말 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혼자 쓰기 싫으니까 계속 나한테 말을 거는 거라는 걸 눈치챘다. 시계의 분이 9가 되자마자 나는 나한테 뭔가 더 말하려 한 햇살이의 말을 냉정하게 끊었다.
"햇살아, 이제 그만! 이제 9분 됐다. 약속대로 혼자 글 써봐야지."
원래라면 생글거리며 자신의 말을 다 받아주는 선생님이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냉담해졌으니 햇살이도 적잖이 당황하긴 했을 것이다. 햇살이는 내 말에 입을 꾹 다물곤 한동안 묵묵히 글자를 끼적였다. 그러다 햇살이가 갑자기 나한테 던진 말 한마디.
"선생님, 근데 왜 제 기분이 나쁘죠?"
그 말을 들었을 땐, 나는 더 이상 응석을 받아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햇살아, 분명 너 시계의 분이 9가 되면 선생님이랑 글 쓰기로 약속..."
"아뇨. 아뇨! 그건 알아요."
햇살이는 거기까지 말한 뒤 다시 입을 꾹 다문 뒤 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보고 나자 햇살이가 이해가 되면서 내 마음이 풀어졌다. 햇살이도 자기가 약속한 건 있어서 선생님에게 정당하게 따질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선생님이 갑자기 자기 말을 끊어버리니 당혹스럽고, 민망하고, 자존심이 상한 건 상한 거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화를 내자니, 자기에게 정당성은 없는 상황. 그러나 기분은 상한 햇살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은 저것이었던 거다. 그게 이해되자, 햇살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저 조그마한 아이도 우리와 같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다채롭게 다 느낀다.
그저 자신의 그 상한 감정을 알아달라는 시그널을 서투르면서도 투박하게 보내는 햇살이. 나는 그날 수업이 끝나고 햇살이를 배웅할 때, 햇살이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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