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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12. 2021

돈,마음,시간의 소비는 다르지 않다.

나의 소중한 인연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울었다.

새벽기도를 위해 간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울 곳을 찾아 깜깜한 새벽, 찬 공기를 가르고 교회를 갔다. 출석하던 교회도 아닌 그저 집 가까운 교회에 앉아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안전하게 철없이 울고 싶었다. 어떤 예열도 필요 없이 앉기만 하면 눈물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24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는 모든 것이 완성될 나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끼던 후배가 선교를 위해 스리랑카에 간다고 기도 편지를 내밀었다. 나는 후원자가 꿈이었는데 후배가 선교를 준비하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대로였다. 어떻게 나만 그대로일 수 있지? 돈을 벌어 좋은 곳에 쓰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꽉 막힐 수 있지? 이해가 안 돼 떼를 쓰는 마음으로 울었다. 그러면 금방 잘 될 줄 알았을까? 내일이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요술봉 휘두르면 세상이 바뀌는 것처럼 달라져 있을까? 내일이 오늘이 되어도, 아무리 내일이 많이 찾아왔어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아 결국 주저앉아 흐느끼던 때.

후배가 스리랑카에 있는 1년의 시간 동안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물질적으로 풍성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첫 후원은 그 친구가 되길 바랐는데, 크지 않다 생각한 내 바람이 이뤄지지 않아 나는 생각보다 많이 절망했고 나답지 않게 우울해졌다. 얼렁 취업을 해서 곧 후원금을 보내겠다고 후배에게, 아니 나에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조금 비참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갈 때마다 열람실 옆 문방구에서 엽서를 샀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후배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그렇게 100장이 넘게 썼을 무렵 굴비 엮듯이 엽서를 이어 스리랑카로 보냈다. 엽서 말고 다른 특별한 무엇은 없었다. 분명 택배박스를 채우기 위해 뭔가 넣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시답지 않은 잡동사니였을 터.


나의 첫 후원은 돈이 아닌 마음이었다.

매월 빵빵한 후원금을 보내며 나 이렇게 멋진 언니가 되어 너를 후원하고 있어, 나는 내 꿈을 이루었어. 만족하고 싶던 마음은 뻥 터져버리고 매일 쭈글 해진 마음을 주섬주섬 꺼내 한 장의 엽서에 담았다. 사실은 보내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을 달래는 행위이자 와신상담의 마음이었는데 100여 장을 썼을 무렵 알게 됐다. 이것이 정말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돈 빼고, 내 만족 빼고 오로지 그 아이를 위한 마음. 별것 아닌 잡동사니를 100장의 엽서와 보내는 것에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1년인지 2년인지 후배는 생각보다 그곳에 오래 머물렀고 나 역시 예정보다 오래 무직 상태였을 때 우린 다시 만났다.

도대체 어떤 곳에 머물렀던 건지 온몸에 벌레 물린 자국으로 돌아온 후배가 내 엽서를 매일 아끼며 보았다 말했을 때 눈물이 펑펑 났다. 너 정말 힘들었구나. 어떻게 그런 곳에서 견딘 거야. 좀 더 나은 환경에 머무를 수는 없었던 거야,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수많은 질문 대신 마음으로 함께 한 시간에 감사했다. 내가 돈이 없어서, 너에게 매월 후원금을 보내지 못해서 그보다 더 많이 마음을 내었어.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나는 그 시간 너와 늘 함께 있었어.라고 말해주었다.


오래도록 깜깜했던 터널을 지나 취업을 했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정말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여기저기 인심을 쓰다 우연히 페루로 떠나는 동생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남자 친구가 알던 후배였는데 갑자기 마음이 동해 후원을 한다고 나섰다. 그렇게 두 번째 후원을 시작했다. 박봉인 월급에서 꽤 큰돈을 매월 그 친구에게 보냈고 돈이 가는 만큼 그 친구가 하는 일을 알려고 노력했다. 이때의 마음은 무엇이 먼저였는지 잘 분간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돈만큼 마음도 커져갔고 내가 돈을 버는 이유를 명확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만족스러웠고 감사했고 충만했으니 지금까지 소중하게 이어가는 인연 중 한 명이 되었다.


내게 소중한 두 명의 인연이다.

돈이 없어 절망했지만 그만큼 마음을 더 해 깊어진 사이, 내가 버는 돈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돈을 통해 마음을 발견하게 된 사이. 그래서 돈이 하찮지 않다. 그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삶의 인연을 발견하게 하고 충만한 연결감을 갖게 하는 것들이 돈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돈이 아닌 마음이 후원의 시작이 되기도 하지만 마음보다 앞서는 돈의 쓰임도 때로는 마음을 깊게 다. 돈과 마음, 무엇이 더 중요해?라는 질문에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 둘은 늘 함께 가게 되어 있어.라고 말한다. 마음이 먼저 가기도, 돈이 먼저 가기도 하지만 결국 모이는 곳에 함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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