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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Sep 02. 2021

녹색어머니 봉사를 하니 보이는 풍경

믿음

"아유, 아직 녹색 어머니가 남아있어? 언제 적 녹색 어머니야?"


녹색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학교 알림에 기함했다.

'녹색 어머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국민학교 시절의 녹색어머니회장 엄마가 생각나면서 그 당시의 녹색어머니회 파워가 떠올랐다. 봉사하는 분들이면서 학교에 목소리를 꽤 크게 냈던 분들. 그래서 그분들의 봉사에 대해 감사하기보다 우리 엄마는 왜 녹색 어머니를 할 수 없나, 하는 소외감을 느꼈던 어린 내가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이런 봉사회가 아직 남아있다니. 내가 녹색 어머니 봉사를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한번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가정의 안타까움이 떠올라 불만이 올라왔다.


녹색 어머니는 학교 주변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찻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봉사회다. 학교마다 운영방식이 다르겠지만 말 그대로 자원하는 분들 위주로 운영되기도 하고 의무적으로 순번을 정해하기도 하지만 펑크가 나면 반 대표님이 수시로 대타를 서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알림에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 아직도 이렇게 봉사로 운영하다니, 이런 건 학교 예산으로 응당 위탁에 맡겨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내가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우리 반 봉사자가 모집이 안 돼서 선생님이 걱정하신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이런 일은 나 아니고도 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하면 안 되냐고 묻는 날이 왔는데 나는 차마 일하니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린 날 엄마가 녹색어머니회에 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마음이 떠올라서 그랬고 선생님을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예뻐서 그랬다.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정말 여건이 안 되는 사람만 있다면 내가 아니어도 되는 게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할 때 핸드폰 보면 안 되지? 엄마 뭐 입고 가야 해?”

난생처음 해보는 녹색 어머니 봉사가 은근히 긴장됐는데 아이들은 신났다. 엄마가 형광 조끼 입고 있는 게 좋냐고 하니 좋단다. 엄마가 거기 서 있는 게 좋단다. 난 엄마가 녹색어머니회에 끼는 게 좋았지 형광 조끼 입고 깃발 들고 서 있는 건 창피할 것 같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니란다. 엄마가 학교 가는 길에 서 있고 무언가 자기들을 위해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나? 잘 모르겠는 마음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권력이고 뭐고 이까짓 오전 반차 내고 자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끼와 깃발, 위생장갑을 받아 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니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고 맞은편 횡단보도에는 노인회 봉사회에서 나오셔서 서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날뛰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도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맞은편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노련하고 적극적으로 차량을 통제하셨다. 그리고 근처 아파트 경비원 분까지 아파트 차량을 통제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바깥으로 한참 나와 서 계셨다. 얼핏 보면 매일 같은 풍경이고 크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이었다.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귀여웠고 부스스하게 부은 얼굴로 아이와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내 눈에 이 모든 풍경이 한눈에 담기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아이들의 등굣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이 있었구나, 아이들은 이런 보호 안에서 자라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꽉 들어차기 시작하니 주책없이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내 보통의 일상은 이 분들의 봉사가 뒷받침되어 이뤄졌구나,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은 이분들에게 빚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신뢰’로 지켜지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뭉클해졌다. 내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이 곧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질서가 유지됐고 나는 그 마음을 받아 다른 곳에서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쎄...어렸을때 느낀 묘한 소외감까지 해결해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마음은 아니까 모이면 방법이 있으려나?


 워킹맘이든 아니든 각자의 상황에 따라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있다. 꼭 봉사를 해야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애쓰는 마음을 기억하고 다른 방면으로 어느 편의 지지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지지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 양쪽에서 같은 힘으로 동일한 시간과 마음으로 말이다. 예산으로 위탁에 맡기지 하며 쉽고 가볍게 누군가를 원망했던 마음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물론 대다수가 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자원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도 함께 반차를 쓰며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니 좋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고 자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의지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희망처럼 여겨졌다. 그래 아직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은 아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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