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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20. 2021

당신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럼 나도 행복할 테니까요.

"요즘 어떻게 지내, 잘 지내?"


친구를 만나 이런 질문에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으리라. 그 친구가 싫어서도 아니고 내가 무얼 감추고 싶어서도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근황을 나눠야 할지 모르겠어서 결국 "잘 지내지 뭐, 너는?" 이렇게 되묻고 만다. 생략된 이야기를 서로 감당할 수 없어서, 또는 지금 나의 문제만으로도 벅차서 그랬다. 어쩌면 서툴러서 그렇다. 길고 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20대를 생각해보면 연예인 이야기, 남자 친구 이야기, 누구 험담만 했지 우리의 진짜 고민, 깊은 내면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자주 연락하고 만났으면서 수많은 기억을 공유했으면서 왜 그랬을까? 20대 어느 시절 가끔 연락이 안 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뭘 잘 못했지?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싶어 다른 친구와 함께 여기저기 연락했는데 친구는 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당시엔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무슨 준비?' 하며 나의 상황에만 비추어 이상하다 여겼다. 나의 준비만으로도 바빴고 내가 하는 것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으니까.

취업, 결혼, 육아 등 타임라인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관심사가 달라졌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같은 비중으로 바라봐주지는 못했다. 지나고 나니 그것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아니면 단지 그런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 걸까? 각자의 어려운 시기를 멀리서 응원하다 다시 만난 우리는 ' 너 나랑 정말 잘 통하네!' 새삼 감탄하는 중이다. 나는 그 친구가 몸을 당겨 빛나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는 듯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가지 말아야 할 자리로 가거나 잘못된 장소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이야기를 공들여 바라보고 싶습니다. 떠날 때 부메랑과 돌아온 부메랑은 같은 것이 아니란 걸 선배처럼 믿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더 던지고 다시 온 힘을 다해 던지는 안부 속에서 선배의 일상이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달라진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나는 지금 나의 문제만으로도 너무 벅차다며 모른 척 지나왔다 해도 내가 마음을 닫지 않는다면, 그 존재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나의 부끄러운 시기를 인정하고 다시 손을 내민다면 서로의 빛나는 눈빛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내가 던진 이야기가, 어린 시절 잘 몰라서 했던 행동들이 잘못된 장소에 떨어졌다 해도 그걸 발견하고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고 믿는다. 바로 그때 우리의 시간을 다시 공들여 바라보며 어른이 된다.


생략된 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것은 어렵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서로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봐주면 그 눈빛이 힘 있는 언어가 된다. 나와 다른 상황이어서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보다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지지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면 언제든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바라봐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인생에 무언가를 던져볼 수 있다. 또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힘을 얻는다. 기어이 용기를 냈구나. 나도 힘을 내야지.


그렇게 서로 다른 우리의 인생이, 다시 힘을 내는 우리의 마음이 주변에 온기로 계속 퍼져나가길 바란다.

당신을 보며 힘을 냈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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