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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NE Nov 19. 2023

라이너노트 : [Humanoid operational]

- 에 대한 과몰입 기록


라이너노트 : 코토바 [Humanoid operational]

- 에 대한 과몰입 기록



어둡고, 어두운 사람이다. 어둠을 담는다. 좋아하는 어둠이 있다. 그것은 증오의 표식이 붙은 상자이다. 품고 다니면서 종종 꺼내보게 된다. 물론 혼자만 볼 수 있는 것으로 타인에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어두움 자체의 표면부이다. 종종 인간과 인간이 만든 것에서 어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가슴이 뛴다.


휴머노이드가 주인공인 세계관은 2년 정도 전에 구상하였다. 그렇게 가지고 있다가 파리로의 출국 전 공연 연출크루들과 EP발매에 대해 상의하면서 해당 콘셉트가 나올 차례임을 깨달았다. 귀국 후 조금 촉박하지만 까짓 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번 작업은 유럽투어 이후 작업에 착수해야 했기에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많았다. 가이드는 나와 있었지만 편곡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투어 내내 약간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귀국 후 편곡을 시작하면서 꽤 흥미로운 과정들을 마주했는데 이는 작업물의 방향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흐름으로 질주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노래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작업하면서 산을 몇 개나 뛰어넘었고 지금 이게 하늘로 솟는 게 맞나 반문하고 또한 마치 인형극의 배경 바뀌듯 곡의 전개가 뒤집히는 등의 사태가 빈번히 일어났다. 우리는 물이 없는 곳을 골라 운행하는 선박에 탑승한 기분이었다. 각자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꽤 이상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으며 그러면서도 분명 침착하게 안정적인 운행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또한 멤버 각자들은 흥미롭고 어두운(?)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이를 지켜보고 참여한 것은 꽤 위대한 과정이었다. 어떤 곡에 악기를 연주한다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각자를 녹여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 과정을 해낸 멤버 각자들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자주 표현하지 않아 어색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각자의 어둠의 편린들을 모아 조각 하나를 만들었다는 감각이 좋았다. 그렇지 음악은 어두워야지, 그리고 이번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든다. 어둡고 매우 빛나게 만들어주셨다.


종종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언젠가 클럽빵에서 혼자 공연을 본 기억이다. 당시에는 여러 이유로 밴드를 못하고 있었고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어떤 처음 보는 삼인조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내는 음파는 분명 전해지고 그들과 나는 같은 물질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각자는 다른 소리를 물리적으로 내면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져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 그것은 분명 어둠이었는데’ 아 좋구나,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인간들이 모여 소리 내는 행위가 좋구나 하며 되뇌게 된다. 인간들과 함께 내는 음파가 좋다, 다른 사상들이 충돌하지만 그래도 그게 좋다, 각 존재가 가진 어둠들과 소리를 내는 것이 좋구나, 인간들과 밴드를 해서 좋다 좋다 하다 보면 ‘인간들이 좋구나’하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정말 그렇게 인간들을 좋아한다고 느끼게 된다면, 영겁의 세월 속에 애써 돌려놓은 대륙을 자력으로 맞춰버리게 된다면, 마침내 애증 하는 어둠을 애정하게 되어버린다면. 그렇게도 미워하는 자기의 눈앞에 스스로 서게 된다.


과연 스스로가 증오하는 어둠을 애정하게 될 수 있을지. 자기 어둠에 대한 증오를 넘어 눈앞에 서 있는 너의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사실 그에 대한 감정이 증오에 가깝다면 자기조차 모르게 그를 무척이나 애정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증오의 표식이 붙은 작은 상자를 각자 품 속에서 찾아봅시다. 만약 열어볼 수 있다면 열어봅시다. 열쇠가 필요하다면 찾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나 열었고 괜찮다면 그 내용물에 대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저는 이 청록색의 짐승을 쓰다듬고 있겠습니다.


(끝)


+ 덧붙이기


안녕하세요 다프네입니다. 2023 서울레코드페어를 통해 새로운 EP가 최초 공개 되었습니다. 잘 듣고 계신가요? 멤버들과 앨범 만들면서 재밌는 일들이 많았던 만큼 즐겁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다른 얘기입니다만, 최근 블루 자이언트라는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보았습니다. 재즈가 주제인 만화인데 무척 좋았어요. 또 보고 싶네요. 주인공들이 열정을 다해 연주하며 성장하는 모습들은 감동이었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그들의 연주를 듣는 관객에 대한 연출이었습니다. 제대로 묘사하긴 어렵지만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연주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음미하고 음파의 바다에 흠뻑 빠져 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음악가가 꿈꾸는 천국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닐까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의 감정과 살아있음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는 것 말입니다. 이번 작업을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블루 자이언트의 장면들을 (멤버들 모르게 비밀스럽게) 많이 생각했습니다. 항상 그런 마음이었습니다만, 이번에도 조금이나마 듣는 이들의 존재를 지면에서 부드럽게 들어 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오세아'의 현장들을 약간 첨부하겠습니다. 그럼 언제까지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다프네 / cotoba




[Humanoid operational] set list


1. intro session : Humanoid operational

2. coii

3. 유리(遊離) isolation

4. 키리에의 숲

5. 오늘도 세상은 아름다워 (shoegaze ver.)

6. 서쪽의 바람 (demo ver. c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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