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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05. 2022

얼마나 바쁘냐고 물으신다면

딸의 전화는 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날씨가 며칠 흐리니 관절이 아프다. 손가락, 무릎, 발바닥과 무릎에 찐득하게 달아붙는 통증.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간호사가 사람 그림을 주며 아픈 곳에 빨갛게 색칠하라고 했었는데, 내겐 그 그림이 ‘류마티스 관절염’의 이미지이다. 비가 오거나 유독 아이를 많이 안은 날이면 슬그머니 색깔이 올라오듯 통증이 짙어진다. 처방받은 약을 날짜에 맞춰 복용하면 충분히 컨트롤 되는 병증인데, 약이 떨어지고도 병원에 가지 않아 고통을 자초하곤 한다. 오늘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라, 기다시피 병원에 와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잠시 카페에 앉아 있다. 내겐 하던 일을 멈추는 게 이리도 어렵다.

한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편집하며 김밥먹고, 운전하며 전화하고, 아이들 스케이트 타는 것 지켜보며 선곡을 한다. 숙제 봐주며 생필품 주문하기, 뉴스 들으며 집안일 하기는 이제 몸에 배었고, 요즘은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려가서 책 읽으라고 하고 나는 방송에 쓸 아이템을 고르는 일이 잦다. 다른 육아동지들도 사정은 비슷한지, 아이 둘 아빠인 후배 피디는 종종 야근하는 날 아이를 회사에 데려오곤 한다. 두세 명 정도만 남아 마우스를 딸깍이는 늦은 밤, 유모차에서 칭얼대는 아기 소리에 홀린듯 다가가 같이 아이를 얼러준 적이 있다. 그래, 니 사정이 내 사정이고 내 맘이 니 마음이지. 

아이 셋 아버지이자 성공한 방송인인 어떤 선배가,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너무 바쁘게 지냈던 걸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식당 주인이 홀에서 테이블 돌면서 ‘맛은 괜찮으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여행이라도 다녀오셨어요?’하고 대화를 주고받기도 해야 좋잖아. 주인이 너무 바빠 보이면 손님도 불편하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뭐 하나를 포기하고 좀 덜 바쁘게 살았으면 좋았겠다 싶어” 그렇지만 대체 뭘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되묻는 질문에 선배는 일이나 자기계발이라고 답했지만, 퍽 확신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 때의 그도 지금의 나도, 그러지 않았고 그럴 수 없다.    

제때 병원 갈 시간도 없이 바쁘지만, 내 일정표의 무엇도 포기할 게 없다. 그게 나의 삶임을 인정한다. 다만 바라는 것은, 홀에서 손님과 있는 동안이라도 주방에서의 정신없는 표정을 감출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안 들키긴 어려워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다. 적어도 이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이라는 건 몰랐으면 좋겠다. 주인이 바쁘면 손님은 불편하다.  밑반찬이 떨어지거나 물잔이 비어도 부르기가 부담스럽고, 맛이 어떤지 얘기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바쁜 엄마에게 아이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내 연기가 통하는지, 열한 살 큰딸은 종종 하교길에 내게 전화해 ‘수다 떨자’고 한다. 내 주변의 누구도, 회사 동료든 친구든 심지어 남편까지도, 나에게 ‘수다 떨자’며 전화해 오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바쁘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만만치 않게 바쁠 것이고. 말하자면, 우리는 주방에서 만나는 사이이다. 내 인생에서 ‘홀에 있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특히 사춘기를 목전에 둔 큰딸은 특별히 잘 보여야 하는 VVIP이다. 딸이 내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미치도록 황홀하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전화를 받는다. 나를 ‘그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은 사람’, ‘심심할 때 전화해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가 내 딸이라는 게, 나를 꽤 괜찮은 인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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