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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16. 2024

사람들의 아픔을 듣는 일이 가슴 떨리지 않는다면

『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독후감

    스텔라 황의 『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신생아’와 ‘중환자’라는 이질적인 두 단어가 결합되는 상황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로 실려 가는 아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숙연해졌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어린아이들만큼이나 안타까운 운명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스텔라 황은 너무 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죽음과 사투의 장면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썼다. 매일 어린 죽음을 대하며 ‘자신이 점차 사라져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불꽃이 꺼져갈 때 그 누가 무력감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을 살리는 일이 의사의 사명이라고 볼 때 그녀는 매일 실패하는 삶을 사는 셈이다. 글쓰기는 그녀가 거대한 무력감과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금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갖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누구나 일에서 성공하기 원하건만 그녀는 실패가 예정된 일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직업을 택했을까? 저자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가 십 대 후반에 잃은 아버지를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녀는 “울고 싶은데 울 핑계가 없어” 마음껏 울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데, 그녀의 행동은 과거에 트라우마적 상황을 경험한 사람이 유사 감정을 느끼게 하는 환경을 피하려 하는 현상과 상반된다. 아기들과 그 가족들의 슬픔을 공유하면서 억눌러왔던 자신의 눈물을 마음껏 쏟아내는 것일까? 

    하지만 울보 의사 스텔라 황은 보기 드물게 건강한 인간이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욕구를 그럴듯한 소명감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그녀를 정직한 자기인식으로 이끌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매 순간 후회하면서도 자신의 일터를 ‘부름 받은 곳’으로 생각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으니 인간이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좇는 존재라는 프로이트의 명제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본인이 엄마가 된 후에 죽은 아이의 부모가 느끼는 고통을 비로소 제대로 느낀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죽음과 씨름하는 가녀린 생명들 옆에서 밤을 지새우고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린다. 의사로서 눈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격을 의심할 때 저자가 멘토로부터 들은 말(“네가 만약 모든 죽음에 매번 슬퍼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그만두는 게 맞을 거야.”)은 전문가인 동시에 인간으로 사는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명언이었다. 이 말은 심리상담가로 자처하는 내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기도 했다. 


    스텔라 황의 멘토가 한 말을 바꾸어 써 본다. “사람들의 아픔을 듣는 일이 가슴 떨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면 나는 이 일을 그만 두는 게 맞을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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