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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05. 2024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청년 유시민

유시민의『거꾸로 읽는 세계사』독후감

    오늘의 국제정세가 ‘어떤 역사의 곡절을 품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을 읽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이야기는 알고 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팔레스타인과 베트남의 이야기에서는 선량한 민중의 반대편에 선 자들을 옹호해온 나 자신의 좁은 소견이 부끄러웠고, 성자로 추앙받는 마틴 루터 킹의 그늘에 가려 광적인 이슬람주의자로 알려졌던 말콤 X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의 초안을 28세의 청년이 썼다는 사실이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이 이 책을 집필한 이유가 ‘독재자가 국정교과서와 신문 방송을 동원해 국민에게 주입한 역사 해석과 싸우기 위함’이었다고 쓰고 있다. 법관을 지망하여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던 그는 캠퍼스에서 법적 정의가 실종된 현실을 목도하고 경제학으로 진로를 바꾼 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은 그가 상급 법원에 항소하면서 쓴 항소이유서에서 그는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내는 부정한 시대’를 고발한다.  

    대학생 유시민이 장문의 글로 법관들의 양심에 호소했던 데에는 억울하게 형을 언도받은 드레퓌스 대위의 재심을 요구하며 신문에 공개서한을 썼던 작가 에밀 졸라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졸라는 당시의 행동으로 ‘빼어난 글과 용감한 행동으로 인류의 양심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작가이다. 저자가 드레퓌스 사건을 첫 장에 실었다는 것과, 그가 항소 이유서에서 보여준 어조가 졸라의 어조와 유사한 것이 나로 하여금 이런 추측을 하게 한다.      

인류의 양심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에밀 졸라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 에밀 졸라, 「로로르」지에서 프랑스 대통령에게 쓴 공개서한 중     


    “훗날 렌(「로로르」지와 재심 요구 여론에 밀려 열렸으나 거짓증언으로 초심 때와 동일한 형량이 언도된 재심 법원)의 재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세상에 공개되면 인류의 파렴치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악의 걸작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전 인류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할, 우리의 비열함에 대한 고백록인 셈이다.” - 에밀 졸라, 「로로르」지에 실은 글 중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하고자 합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 유시민, <항소 이유서> 중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네크라소프, 유시민이 <항소 이유서> 말미에서 인용함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나의 추측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을 통해 글이 총보다 큰 소리로 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에밀 졸라의 철필이 프랑스 시민의 양심을 되살렸듯이, 유시민의 글은 무지의 장막에 갇혀 있던 나의 눈을 열어주고 내 가슴에 진실을 향한 불길이 일어나게 했다.     

     유시민은 학생운동의 선동에 서 있었던 1970~80년대의 대한민국은 정치적 격동기였다. 서울의 봄이 찾아오던 해 나는 모교의 총학생회 한 귀퉁이에 있었는데 내가 왜 거기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누군가의 제안을 받고 거절을 못하여 학생회가 무엇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간 것이리라. 내가 학생회에 들어가던 그해 5.18이 일어났고 교문은 굳게 버렸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어른들이 데모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는 명분은 딱 한 가지였다.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하는 논리였다. 학생이라고 교과서만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을 기르는 것도 공부라고 항변하기에는 나의 지식이 너무 짧았고, 나는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의존형 인간이었다.  

    데모하는 또래 대학생들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다. 저들은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내 주변에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나의 대학생활이 조금은 달라졌을지 모르나 나는 착한 딸과 참한 신부감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이끌려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60대가 된 내가 젊은 유시민이 쓴 책을 읽으니 40년 전의 내 모습에 더 큰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었을까?


    내가 작가에게 경탄하는 이유는 그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에도 있다. 참고서적 목록에 올라 있는 100 권 넘는 책(이 책들을 40년 전에 다 읽지는 않았을 지라도)들은 그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60대의 유시민이 썼다면 나도 색안경을 쓰고 읽었을 것이지만, 20대의 유시민이 쓴 책이라 생각하니 마음을 열기가 훨씬 쉬웠다. 20대의 나이는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편집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나이며,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는 나이이다. 따라서 나는 20대 청년인 작가가 자신의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해, 그리고 기존에 갖고 있던 역사 지식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책들을 탐독했다고 믿는다.  

    나의 차가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준 청년 작가 유시민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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