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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02. 2023

왜 결혼 안 해요?

김희경의 『에이징 솔로』를 읽고

    나는 스스로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되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이다. 열심히 책을 읽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편견은 거기서 벗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편견인 줄 모른다고 누가 그랬던가? 『에이징 솔로』를 읽으면서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정관념들을 발견했다. 

     

    2년 전부터 약사들로 구성된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40대 초반의 솔로 여성 약사가 이 모임의 발기인이다. 회원들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녀에게 “왜 결혼 안 해요?”라고 물었다. 젊은 여성 전문가들과의 만남이 설레었고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으면서도 그런 몰상식한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기혼 여성들이 오히려 더 곤란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나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아휴, 결혼한 사람에게 왜 결혼했냐고 물어봐야 하는 건데 실수했어요.” 하면서 얼버무렸다.   

    나의 질문 속에 ‘중년 여성이 결혼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60년생 여자의 고정관념이 스며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 가족보다 솔로로 구성된 가구의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결혼한 사람들에게 왜 결혼했는지를, 가족을 이루어 사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했는지 묻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나도 지금 시대의 젊은이라면 왜 결혼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을지 모르지만, 60년생인 나는 가족 중심 사고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그런 사고에 투철한 부모의 딸로 자랐기 때문에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을 넘어 유일한 선택,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우리 세대의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모종의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것도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이다. 이런 고정관념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남들 눈이 무서워서라도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왜 결혼 안 해요?”는 “왜 아이를 낳지 않아요?”와 더불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2대 질문이다. “애인 있어요?”, “좋은 사람 소개해 줄까요?”는 2대 질문에서 파생된 질문들이다. 지금도 노인 세대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자녀나 손자녀가 결혼하지 않고 있는 것과, 결혼했어도 자식이 없는 것이다. 효심 지극한 자녀와 손자녀는 부모와 조부모의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연세 지긋한 분들의 관심사는 가족 중 젊은이들의 혼사 문제와 자녀 출산 문제가 주를 이룬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과 수준이 맞는 상대를 고르고자 하는 교환가치가 시너지를 일으킨 덕분에 결혼 시장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약화되면 중매 시장과 예식 시장에 자본이 흘러들지 않을 것이므로 사회 전반의 경기 진작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야말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시키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것 같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일련의 교사 자살 사건으로 드러난 ‘내 새끼 옹호주의’ 역시 가족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왜곡된 가족주의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다. 가족의 가치를 무조건 폄하할 의도는 없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현대사회에서 결혼과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이룬 가정은 몸과 마음에 안식을 주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넘어, 그 가족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을 도구로 인식하거나 심지어 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교사 자살 사건은 학부모의 극단적 이기주의 외에도 학교라고 하는 제도의 구조적 모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학교장의 권위주의 역시 가부장적 사고에서 온 것이라고 볼 때 가족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조리를 양산하고 있는 것 같다.  

중년 비혼 여성들의 삶을 탐구한 책, 『에이징 솔로』

   그러나 이렇게 가족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나 자신도 가족주의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전히 부모님을 몰라라 하는 남동생을 미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미움의 이유는 부모님을 모시는 부담을 나와 여동생이 반씩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 분의 일만 부담해도 되었을 일을 이 분의 일씩 맡고 있다는 단순 계산에서가 아니라 아들이 아들의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억울함이 문제다. 

    이번 추석 연휴에 엄마가 발목을 다치셔서 3박 4일 입원시켰다가 오늘 퇴원시켜드렸다. 응급실 의사가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전문의가 뭐라고 할까 노심초사했는데 오늘 출근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수술은 필요 없고 석고 깁스만 하면 된다고 하여 나로선 큰 짐을 던 셈이다. 오늘 밤은 막내가 할머니 간병을 하기로 했고 내일부터는 내가 친정에 가서 자야 할 것같다. 엄마 돌보는 일에 지치면 어쩔 수 없이 동생에 대한 울분이 또 솟아날 것이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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