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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19. 2024

사랑은 응답을 이끌어낸다

손원평의 『아몬드』 독후감

    손원평의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에 상처도 없는 소년과 인생의 가시밭길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소년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윤재 자신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자기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괴롭히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윤재가 처음으로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곤이가 나비를 학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날개가 뽑히고 바늘에 찔리는 나비의 모습이 윤재를 불편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불쾌감이나 혐오감, 또는 연민을 느꼈을 상황이었지만 윤재는 나비가 당하는 일이나 곤이의 잔인성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곤이와 윤재가 서로를 몰랐을 때 단지 곤이가 화를 못 이겨 나비를 괴롭혔다면 그 일이 윤재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쟤는 왜 저러지, 정도로 생각하고 주의를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곤이가 나비를 학대하는 이유가 윤재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인지한 후 그는 곤이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곤이는 윤재를 이해해보기 위해, 윤재가 정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소 격렬한 감정이 일어날 법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결국 곤이가 의도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 의도만은 윤재에게 가 닿았다.

    그 후 윤재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곤이가 제풀에 지쳐 윤재의 헌책방에 발길을 끊게 되자 그때부터 윤재는 곤이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멘토인 심박사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 끝에 곤이가 자신과 친해지기 원한다는 것을 이해한 윤재는 곤이의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 곤이의 집을 찾아간다.


    심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윤재는 자신에게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욕구는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곤이의 손짓이, 있는지도 몰랐던 윤재의 인간적 요소를 자극한 것이었다. 곤이는 윤재를 좀 더 알고 싶어서, 또 윤재와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윤재에게 다가왔다. 곤이의 의도를 알아차린 윤재도 곤이를  알고 싶어졌고, 곤이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싶어졌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이 사이에 우정이 싹트는 신비한 순간을 묘사한다. 곤이는 마종기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터서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강물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 끝에서도 들리는’ 우정을 맺고 싶었던 것이다.      

    심박사에게 윤재가 “친구가 되고 싶을 때 눈앞에서 나비를 찢어 죽이기도 하나요?”라고 묻는 말은 독자를 실소하게 하지만, 백지 같은 그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명언이다.


    자기를 찾아온 윤재에게 곤이는 죽어가는 자기 엄마를 만났던 경험이 어떠했는지 묻는다. 윤재는 곤이 엄마의 얼굴이 곤이와 비슷하게 생겼더라고 말해주고 마지막에 자기를 안아주었을 때 따뜻했다고(문자 그대로 신체 온도가 높았다고) 말해준다. 윤재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했지만 곤이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그리움과 사랑의 눈물을 쏟아낸다. 그 순간 윤재는 오래 보지 못한 어머니를 만난 아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된다.

    그 후 학교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곤이가 범인으로 몰린다.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고 윤재조차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자 곤이는 가출하여 ‘철사’라는 악당의 수하가 되기 위해 그를 찾아 간다. 윤재는 자신의 태도가 곤이를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넣은 데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곤이를 찾아 나선다. 결국 곤이를 찾아낸 윤재는 철사에게 곤이를 위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철사가 휘두른 칼에 찔려 의식을 잃어가던 윤재는 곤이가 아니라 자신이 칼에 찔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죽어가면서도 윤재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몸으로 카페 문을 막고 있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할머니의 행동을 비로소 이해한다. 그리고 윤재는 생애 최초의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 속에는 슬픔과 기쁨과 아픔과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여 있었다.

    곤이를 통해 처음으로 우정이 무엇인지를 배운 윤재는 곤이가 스스로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을 막고 싶었다. 간절히. 그 대가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래서 그는 철사의 칼에 찔림으로써 곤이에게 자신의 우정을 증명했고, 윤재의 행동은 곤이의 차가운, 가시투성이의 마음을 녹인다.    

           

    사랑은 위대하다. 사랑은 반드시 응답을 끌어낸다. 소설 『아몬드』는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작가의 사랑이 독자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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