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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ul 29. 2022

언어 배송의 조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 라디오를 켠다. 청각 정보만 주어지는 라디오는 그 어떤 시간이든, 무엇을 하면서도, 집중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정보 수신 매체이다. 시각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 요즘, 가장 강력한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라디오는 나에게 좀 더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로, 여러 종류의 강연을 일부러 찾아 들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말’의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강연을 듣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어떻게 말을 해야 수신자가 편안함을 느끼고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이 깨달음은 나의 일상에서도 적용되는데, 라디오를 들을 때가 그렇다. 하루에 5시간 정도는 라디오와 함께하므로 그 속에서 나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다. 음성 매체인 라디오에서는 사람의 태도, 온도, 질감까지 예민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청취자인 나 역시 예민하게 그들의 특징을 캐치할 수가 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되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를 출근 준비를 하며 매일 듣는다. 이 프로그램의 매주 화요일엔, 김찬용 도슨트가 나오는데, 그는 매주 한 명의 예술가를 선정하여 그의 삶, 작품에 대한 임팩트 있는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한다. 전시장이 아닌, 라디오에서의 도슨트 역할은 전달력이 더욱이 중요한데, 그가 정확하게 잘 끊어 말하는 문장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눈앞에 해당 작품이 선명하게 채워지는 듯하다. 


 무슨 직업이든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도착지에 배송해야 한다. 택배 기사, 화물 운전사가 그렇듯, 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모든 이들도 그렇다. ‘말’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나. 


 지금껏 내가 관찰하고 판단한 결과, 정확하고 안전하게 배송되는 말들엔 이런 특징이 있다. 


 첫째, ‘조’가 없다. 


‘조’는 의존명사로, (주로 '-는 조로' 구성으로 쓰여) '말투'나 '태도'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1] 쉽게 말해, 특정 말투나 억양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말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으로 ‘조’를 꼽는데, 내가 듣는 사람(listener)일 때, 이것이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사람(speaker)일 때도, 이 점을 첫 번째로 신경 쓴다. 어느 순간 내 귀에 ‘조’가 꽂히면 제아무리 목소리 좋은 남자일지라도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조’만 들려올 뿐이다. 파악하건대,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조’는  “이제” 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라. “이제”는 프리젠테이션 자리에서 많이 들어봤을 부사일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프리젠터가 가장 많이 쓰는 ‘조’이다. 어떤 자리에서는 바를 정을 그리며 ‘이제’의 횟수를 세고 있는 날 발견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조’ 없이 조리 있게 말을 잘하기가 어렵고, ‘조’ 없이 전달받은 메시지는 매우 효과적이다. 


 둘째, 절제력이 있다.

 

 이 특징은 첫 번째 특징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힘을 의미한다. 즉,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고급 스킬이다. 본인의 에너지와 시간을 아껴 쓰며, 더불어 듣는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까지 고려하는 영리한 태도. 이 스킬에 가장 뛰어난 강연자는 작가 ‘이슬아’라고 생각한다. 여러 번에 걸쳐, 그녀의 강연을 듣고 곱씹었다. 음높이가 낮고 느린데도, 그녀의 말엔 강한 호소력이 느껴졌다. 글과 말의 경험을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곳에서 해 보았기 때문이겠지. 이슬아의 글과 말엔 절제력이 있다. 더 읽고, 듣고 싶어도 적절하게 필요한 것만 주는 쫄깃함이 있어 좋다. 그녀처럼 쓰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제력은 스스로뿐 아니라 듣는 사람까지 고려한 사랑의 태도이다.


 소리 높여 외친다고 좋은 연사가 아니듯, 목소리만 크다고 해서 훌륭한 speaker가 아니다. 매일 듣는 라디오를 통해 나는 어쩌면 이미 훌륭한 listener는 되었다. 이젠, 김찬용 도슨트나 작가 이슬아처럼 꽤 괜찮은 speaker가 되고 싶다. 

       

   

[1]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조’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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