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재는 시간을 나노 단위로 쓰는 30대 예술가다.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오늘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한다. 저녁 밥상을 준비하면서 내일 할 일에 대한 체계적 계획을 세우고, 아침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오늘 입을 옷과 그날의 식사 메뉴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는 주로 진행하고 있는 일의 결과에 대해 최선과 최악을 상상한다.
그래서 희재의 머릿속은 늘 바쁘다. 당장 닥친 일에 대해 생각하는 횟수가 잦지만, 미래의 일을 그리는 공상과 상상에도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 상상으로부터 새로운 일이 탄생하기도 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희재는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그녀는 친구와 함께, 여러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친척과 함께,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온전히 혼자 산 지는 7년이 되었다. 혼자 살면서 그녀는 더 꾸준하고 성실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습관을 길러 왔다.
정신과 육체를 쉴 틈 없이 굴리는 희재에게도 잠시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이 있는데, 하루의 끝에 샤워하며 팬티를 빨 때이다. 샤워를 하면서도 이번 주에 해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하기 바쁜데, 샤워의 마지막 순서인 팬티를 빨 때만큼은 그 행위에 집중한다. 속옷에 진심인 그녀는 하루의 체취가 묻은 팬티를 바로 세탁기에 넣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두부같이 생긴 흰색의 두꺼운 빨랫비누로 정성을 다해 빤 후, 수건걸이 위의 선반에 잘 마르도록 널어놓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마치 희재에게 하루의 끝 의식과도 같다. 다음 날 아침, 양치하며 화장실에 널린 전날의 팬티를 수거하고 빨래통에 넣는다. 그러니, 그녀의 팬티는 손빨래로 한 번, 세탁기로 한 번, 이렇게 두 번 빨리는 셈이다.
희재는 3년 전부터 캠핑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산과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새소리와 짠 내를 듣고 맡으며 많은 밤을 보냈다. 수많은 밤을 밖에서 먹고 자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벌레와 함께 자는 것도, 더위와 추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희재의 하루 마무리 의식을 치를 수 없어서였다.
아무리 쌩얼이 부끄럽지 않고, 다 벗고 함께 샤워하는 캠핑 메이트라 할지라도, 그녀의 팬티를 텐트 안에서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캠핑하러 가면 샤워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세상을 다 가진 듯 시원하게 씻을 수 있는 날에도 팬티를 빨 수 없었기 때문에 찝찝하기 일쑤였다. 이는 마치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못 하고 나온 느낌과도 같았다. 어느 날은 이 찝찝함을 참을 수 없어서 샤워를 마치고 집에서처럼 팬티를 빨아보았다. 축축해진 그것을 널 수 있는 곳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텐트 안에 널어놓기엔 함께 자는 친구에게 미안했다. 나무 위, 캠핑 데크 어딘가에 걸쳐두기엔 동네방네 나의 속옷을 보여주는 셈이 될 테고, 누군가의 지붕 위에 날라가 그것이 안착해 있을 상상을 하니 민망해졌다. 그리하여 희재는 텐트 안 구석 자리에 팬티를 지퍼백에 넣고 잘 펴서 입구를 열어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잘 펴두었다고 했지만, 팬티는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제대로 마를 수 없었고, 이것은 팬티를 빨지 못했을 때의 찝찝함을 더 넘어서는 찝찝함이었다. 이 경험 이후로, 희재는 캠핑하러 가서 팬티를 갈아입을 때마다 전에 입었던 팬티를 이미 빨았다는 상상을 하며 그녀의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희재의 하루의 끝은 그렇게 물리적으로든, 상상에서든 팬티를 빨고 널며 마무리된다. 이것은 그녀에게 하루의 육체적, 정신적 오물이 다 씻기는 의식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상큼하고 깨끗한 내일을 살기 위한 다짐과도 같은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