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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롱 Apr 14. 2020

신의 계획

그리고 신의 자비

너 강아지 키워? 핸드폰 배경화면에 뜬 강아지사진을 보고 지연이 말했다. 응. 짱 귀엽지. 다연이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개구진 말투와 표정으로 대답하니 지연이 아 더러워. 하고는 소리없이 웃는다. 몇살이야? 이제 두살 조금 넘었나? 그럴걸. 아 아직 애기구나.. 지연이 곧 이어 한숨을 내쉬더니 나도 강아지 키웠었잖아. 하고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아 그랬어? 몰랐네. 얼마나? 음... 좀 됐지. 페키니즈였는데, 16년정도 살다가 나 고등학생 때 죽었어. 아 그랬구나.. 그래도 되게 오래 살았네. 응. 할아버지였지 뭐. 우리 똘이도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오겠지.. 갑자기 분위기가 서글퍼진다. 당연하지. 난 우리 까망이 보낸 뒤로는 강아지 더 이상 못키우겠더라. 우리 까망이만한 애가 없을것같아. 그리고 다시 그런 일을 겪을 자신이 없어. 너무 힘들었거든. 그래. 들어보니 그런다더라. 펫로스가 사람 죽는거만큼 힘들대. 가족이잖아. 그치. 나도 우리 똘이.. 생각만으로 무섭다. 강아지들은 왜 이렇게 빨리 죽을까? 잠시 둘은 침묵에 잠긴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는데, 그건 틀렸어. 고통은 인간이 만들어내는거고 신은 망각이라는 자비를 베푸는거지. 까망이를 가족으로 데려온건 나고, 까망이를 잃었을 때의 슬픔을 점점 잊어가지 못했다면, 점점 무뎌지지 못했다면, 난 절대 살 수가 없었을거야.


있잖아. 내가 얼마전에 집에서. 다연이 핸드폰을 끄고 책상위에 뒤집어 얹어놓더니 지연을 향해 입을 연다. 지연이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다. 그.. 우리 집 벽에 커다란 십자가 있는거 알지? 응 알지. 그 밑에서 잠든 우리 똘이 쓰다듬고 있었거든. 응. 근데 갑자기 똘이랑 십자가가 한 눈에 크게 보이더라. 회상에 잠긴듯한 다연의 옆모습에 지연은 기다린다.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신이 바라보는 강아지의 삶은 어떨까. 정말 0.1초의 짧은, 어떤 찰나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연은 다시 앞을 바라본다. 어. 그러겠지. 우리도 그렇게 보일거야. 그럼 우리의 이런 고민들은 전부 그냥 순간에 지나지 않는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다시 침묵에 잠기는 둘.


강아지가 인간보다 짧은 생을 선택하고, 현재에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단순한 열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거야. 내일이 없는, 오늘만을 사는 삶을 사는거지. 나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강아지가 보는 인간들은, 굉장히 미련해 보일지도 몰라.


지연아. 너는 환생을 믿어? 갑작스런 다연의 질문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지연. 어... 음. 글쎄? 왜? 지연의 물음에 다연이 말을 잇는다. 나는 믿거든. 환생. 가끔 그럴 때 있지않아? 왜,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름끼치게 인생이 계획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지연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우리가 한국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우리가 미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전혀 다른 삶일텐데 그런 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우리가 됐잖아. 응 그렇지. 그 때 그걸 겪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걸 하기 위해서 과거에 그걸 겪었구나 하는 그런거 말이야. 음...? 아니, 그니까 지금 이 순간도. 이게 알고보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음.... 응. 대충. 지연은 다연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어렵게 느껴진다. 다연은 그런 지연을 개의치않고 말을 이어간다. 만약에 환생이 있다면 전생에서부터 현생, 그리고 다음 생까지 이어진 엄청 큰 계획일수도 있잖아. 아, 잠깐만.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 이야기를 듣던 지연이, 다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픽 짓고는 고개를 숙인다. 야. 너... 야야야야. 너무 갔다. 이야기가 너무 심오해지잖아! 아냐, 아니라니까~ 진짜 잘 생각해봐. 지연은 한숨을 폭 내쉬며 기지개를 편다. 아이고오~ 야, 아지 얘기하다가 뭐야. 아 그러니까, 들어봐봐.


옆에서 흥분한 채 열변을 토하고 있는 다연을 두고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드는 지연.


그렇게 모든게 어떤 계획속에 있는거라면, 난 어떤 결과를 위해서 까망이를 만난거야? 이 0.1초도 안될 여행속에서. 전생과 환생이 존재해서 우리를 계속해서 잇고 있다면, 언젠가 모든 우주의 끝에너를 다시 만날 수도 있을까. 신에게 온전히 나를 맡긴 삶이라는 것은, 아마도 오늘만을 살아가던 까망이 너를 닮은 삶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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