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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Aug 05. 2019

네겐 너무 위험한 세상

어린이들과 함께한 나들이




  말을 해도 닿지 않는다. 누구도 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웃고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하며 즐거워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을 수 없고, 그 단어를 설명할 말도 떠올릴 수 없다. 모든 사물이 내겐 크고 무겁고 날카롭다. 세상은 너무나 높고 원하는 것들에는 매번 손이 닿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삶이다.






  두 달 전 조카들과 서울로 나들이를 갔다. 차 없이 올라왔던 덕에, 서울까지의 교통수단은 지하철로 결정됐다. 버스는 중간에 내려서 아이들에게 뭔가 먹이거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과 두 살 어린이들은 지하철을 처음 타본다고 했다. 목표지는 28개의 역을 지나야 도착하는 서울 용산역, 예상 소요 시간은 한 시간 반. 우리는 거대 프로젝트를 책임진 듯 비장하게 여정을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러 역까지 가는 것부터 고난이었다. 유모차를 들고 오르기에 지하철 계단은 너무 높았다. 빙빙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자, 그 앞에는 팔다리가 멀쩡한 20대 커플과 40대 남성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저런 사람들이 먼저 타면 유모차는 못 탈 때도 있어." 옆에서 유모차를 끌며 언니가 소곤거렸다. 우리는 느릿느릿 닫히는 문 앞에서 닫힘 버튼을 열심히 누르는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노약자와 장애인 픽토그램이 무색했다.


  스크린도어 앞에서 몇 분을 기다리자 지하철이 왔다. 스크린도어가 없었을 경우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스크린도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역은 타는 곳과 전동차 사이가 넓습니다." 그 말이 섬뜩하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나는 제 발로 타겠다는 조카의 손을 잡고, 발만 쳐다보면서 지하철에 탔다. 어린이는 노약자에 속하지만 노약자석에 앉힐 수 없었다. 다행히 자리가 많아 일반석에 조카를 앉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 중에 '맘충' 소리를 무서워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열차 안에서 뛰거나 울까 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의 여정 동안 내 마음을 타게 했던 건 조카의 행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얌전하고 조용히 한 시간을 참아냈다. 정작 내 신경을 거스른 건 방석 없이 금속으로만 만든, 유선형의 의자였다. 발에 땅이 닿는 나에게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짧은 다리의 조카는 자꾸 앉은 채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미끄러지지 않게 팔을 안전벨트처럼 두른 채 한 시간이 지나자 벌써 지친 기분이 들었다.


  그날 하루만 해도 그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와 갈 만한 곳'으로 잘 알려진 대형 몰에서는 엘리베이터 앞에 계단이 있었다. 휠체어와 유모차를 위한 경사길은 붙어 있지도 않았다. 그 엘리베이터 손잡이는 딱 조카의 머리 높이에 있었다. 나는 조카가 손잡이에 머리를 박을까봐 줄곧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카가 식탁을 지나칠 때마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모서리를 손으로 감쌌다. 화장실에는 어린이용 변기도, 어린이용 세면대도 없었다. 아이를 들고 손을 씻겨주느라 블라우스가 축축하게 젖었다.


  아이들과 먹을 만한 음식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메뉴는 뻔하고 한정적이었다. 칼국수 아니면 불고기나 돈가스. 음식을 시키기 전, 불고기가 맵진 않냐는 질문에 점원은 전혀 맵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온 불고기를 한 입 먹자마자 조카는 더 안 먹겠다며 완강한 반응을 했다. 먹어보니 분명 고추가 들어간 요리였다. 점원은 함께 시킨 곰탕을 두 살배기 앞에 내려놓았다. 한 명은 아이를 잡고, 한 명은 음식을 옮기고, 한 명은 식탁을 비우느라 급하게 유난을 피웠다. 탓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무신경함에 화가 났다.


  조카와 함께 한 하루가 통째로 그런 식이었다. 세상은 너무 크고, 날카롭고, 무신경했다. 내겐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조카들에게는 위험한 것으로 돌변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이를 즐겁게 하는 것보다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하는 데에 집중하는 내가 있었다. 즐겁게 시작한 나들이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예민하고 피로해졌다. 잠깐만 눈을 떼면 아이들은 위험에 처했다. 아이는 둘이고 어른은 셋인데도 손이 모자랐다. 이런 세상에서 엄마 아빠는 어떻게 나를 큰 흉터 하나 없는 어른으로 키웠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지하철에 탔다. 지쳐서 눈을 끔뻑거리며 조카가 말을 걸었다. "진짜 재밌었어." 나는 안도하고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세상이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다. 물론 젊은 여자로 살아가면서 세상이 내게 안전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나 위험하고 불편했다는 건 잊고 있었다. 누군가는 계속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데도.


  매운 음식에 '맵다'라는 표시가 없어서 음식을 버린 적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 계단이 있다고 화를 내본 적 없다. 스크린도어가 없을 땐 얼마나 위험했을지 헤아린 적 없다. 지하철의 의자가 그렇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식탁들의 모서리가 날카롭단 걸 깨달은 적 없다. 운전자보다 낮은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까, 고민해본 적 없다. 휠체어 리프트가 얼마나 위험하고 오래 걸리는지 찾아본 적 없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어떻게 시내버스에 탈지 궁금해 한 적 없다. 네게 세상이 그렇게 두려울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내가 바꾸지 못한 세상이 너무 위험한 곳이어서. 개인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거절과 배제의 경험을 안기는 가게들이 너무 붐벼서. 유모차가 많이 다니는 백화점부터 공공기관까지도 계단 옆에 경사로가 없어서. 누구든 아이였지만 언젠가 아이가 아니게 된다는 이유로 그들의 세상을 돌아보지 않아서. 그들의 삶을 먼저 궁금해하지 않아서 부끄러웠다.






  저녁에 2호선을 타고 지나갈 때면 모든 사람이 어느 순간 고개를 든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거나 신문을 읽던 사람들이 창문을 바라본다. 지하철의 창틀 밖으로 노을이 질 때다. 나는 나이가 몇 살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가 숨죽여 노을을 보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 시간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그 아름다움을 유모차에 탔거나 휠체어에 탄 사람이라고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다시 조카와 나들이를 가고 싶다. 그 날까지 세상을 훨씬 안전한 곳으로 바꾸진 못하더라도, 조금 덜 두려울 수 있도록 함께하고 싶다. 조카의 삶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 그렇게 함께 걷는 한 걸음이 언젠가는 우리를, 더 많은 사람이 창틀 밖의 노을을 바라보는 세상으로 데려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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