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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Aug 12. 2019

재기발랄하지 않은 20대로 살아남기

특별하지 않은 스스로와 화해하는 법



  바야흐로 캐릭터의 시대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그리고 브런치에서도.


  사람들은 콘텐츠보다 캐릭터를 사랑한다. 장성규나 박준형과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앞세워 유튜브 플랫폼에 뛰어든 스튜디오 룰루랄라(JTBC)는 도합 3백만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tvN에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관심사는 방송의 내용이 아니다. 나영석 PD의 예능인지 아닌지다. 스브스뉴스(SBS)는 '재재'라는 독특한 연반인(연예인+일반인) 캐릭터로 <문명특급>을 성공시켰다. 방송사가 아니더라도 예시는 많다. 유명 유튜버가 빌딩을 매입했다는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일반인이지만 일반인이 아닌 스타 인플루언서들은 연예인을 호가하는 인기를 누린다.


  이처럼 구독자라는 이름의 팬(fan)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중요한 것은 콘셉트 마케팅이다. 스스로를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로 포장할 수 있는지가 곧 나의 스펙이 된다. 그러나 단순히 매력적이어서만은 안 된다. '그냥' 예쁘고 잘생기고 유능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남들과 나의 캐릭터를 차별화하고, 내 이야기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를 드러내는 일이다.


  SNS가 아닌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소개서의 문항과 양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대외활동에서조차 재기 발랄하고 끼와 열정이 넘치며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20대를 뽑고 싶어 한다. 남들과 다르게, 더 독특하고 새롭게, 자신의 재기발랄함을 어필하는 20대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나는 재기발랄하지 않은 20대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 이후로 나는 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무리에서 멀어지지 않는 법을 찾고 있었다. 보통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진 않았다. 그럴 용기도 숫기도 없었고 무엇보다 보통에서 벗어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면서도 남들과 달리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내 안의 특별함을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있지만 못하는 것도 있고, 남들보다 예민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둔한 부분도 있다. 그냥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평범함 자체가 나를 괴롭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의 특별한 부분이 아직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라는 환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으면 나의 평범한 모습들이 거짓되고 모자란 점으로 느껴졌다. 재기 발랄하고 열정적이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스무 살이라는 콘셉트는 치수가 작은 구두처럼 죄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발랄하거나 비타민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대신 꾸준하고 책임감 있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노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남들 앞에 나서서 일하는 건 잘하고 좋아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뱅크는 아니지만 내 일은 끈질기고 완벽하게 해낸다. 트렌드세터는 아니어도 남들보다 빠른 트렌드 팔로워이고, 다재다능하진 않아도 박학다식하다. 스타가 되진 못해도 계속 글을 쓰고 있다.


 특별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새로운 나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특별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는 뒤집어보면 지금까지 나의 일상을 유지해온 성격이었고, 내가 단점이라 생각했던 장점이었다. 그렇게 나는 특별하지 않은 스스로와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






  분위기 메이커 열 명이나 비타민 열 명만으로 사회는 굴러갈 수 없다. 모두가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에 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특별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건 좋은 사람이다. 특별하거나 아니거나, 독특하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남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 다재다능하진 않아도 맡은 일은 잘하는 사람. 그래서 나를 거친 동료들에게 "꽤 좋은 사람이야."라는 평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하나가 예쁘게 생기진 않았지만, 그래서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그러다 보면 특별하지 않은 나도 반짝반짝하게 갈리고 닦여 빛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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