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련할 정도로 일을 몰아서 벌려놓는 스타일이라 한국에서 무려 사이버대를 3학년 편입한 채로 이 곳에 왔는데, 거참 이 녀석이 참으로 몹쓸 녀석인 것이다. 이미 한 번 졸업을 했었고, 모교에 재입학한 상황이라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그새 시험 시스템이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무려 '동시 시험'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한국 시간 8시에 시험을 봐야 했다. 그래도 겨울이라 서머타임이 지나 새벽 3시에 시험이 시작되었지만(중간고사까지는 새벽 4시 시작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육체노동을 하면서 18학점의 수업을 듣는 것은(전공은 한국어문화학과이다... 끝없는 국문법의 향연...) 정말 미친 짓이었다. 지난 학기에 분명 휴학을 하거나 12학점만 듣자고 다짐했건만(그땐 이곳에 도착해서 아직 일을 안 하고 있을 때였다) 그놈의 성적 뽕이 뭐라고... 나는 왜 미쳐서 18학점을 신청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다음 학기는... 인생 최초로... 휴학을... 할 것이다...
그! 래! 서!
앞 포스팅을 올리고 무엇을 했냐면!
새로운 곳의 면접을 보고, 가끔가다 한 번씩 이력서를 넣었으며, 일을 그만두기 전 생활비를 벌어놓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했다. 물론 그 중간중간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도 잊지 않고. 일을 그만두고는 그제야 엄청나게 밀린 수업을 들으며 기말고사를 봤다. 다시는 나의 저질체력을 시험하지 않으리. 누구보다 저질인 인간이 참으로 욕심만 많다. 한 달 동안 나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중간에 사무직 면접 당일 취소도 겪고 말이다... 이곳의 한인 기업은 진짜 한국보다 더한 것 같다.
모든 것은 지난 일요일에 끝났다. 그렇다,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진정한 휴식의 시간인 것이다.
물론 그동안 글을 올려보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의 시도를 해본 결과, 자꾸 과제처럼 글을 쓰거나 개인사 TMI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지금 쓰는 것이 TMI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바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한국에서도, 밴쿠버에서도 밝은 나의 생일날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집 밖을 벗어나서 생일을 맞아본 적이 없기에 얼떨떨하다. 어제부터 몇 안 되는 한 줌의 소중한 지인들로부터 축하 연락이 쏟아지는데, 정작 이 곳은 12월 18일이라 감흥이 없는 것이다... 시차라는 것이 참 얄궂다. 내가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서 태어난 날조차 바뀌어버린다. 여하튼 정작 나에게는 나의 생일이 아닌 시점에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기분은 참으로 이상했다. 정작 나는 이 곳에서 생일 전날에 면접 보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오늘 드디어 바쁘고 힘들어서 하지 못했던 방청소를 하였고,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던 매니저와 면접을 보고 난 후 복잡해져 버린 상황에 고민이 생겼고, 전 직장에 가서 마지막 페이첵과 팁을 챙기고(다들 언제 돌아오냐고 농을 해 아주 복장이 터지게 하더라!), 슬렁슬렁 걸어서 치폴레에 가서 보울 한 사발을 때리고 여기저기 아이쇼핑을 하였고, 집 앞 궁금하던 와플집에서 과일 와플을 먹었고, 집에 와서 하이볼 두 잔을 말아 넷플릭스를 틀어 로니 쳉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아시아 코미디언이 미국을 망치는 이유'를 보았다. 덤으로 쇼가 끝나갈 때쯤엔 DAVIDsTEA의 bai hao yinzhen(중국 백차 중 하나인 '백호은침')과 어제 맥아더글렌 아웃렛에 가서 사 온 Lindt의 초콜릿도 까먹었다. 따뜻한 음료에 녹여먹는 맛있는 초콜릿은 정말 최고이다! 100개에 30불짜리로 더 사 올걸!
나는 항상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인정해야겠다. 매번 생일날이 다가오면 올해는 뭘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회한이 들곤 했는데(그래서 11월 중순부터 굉장히 우울해지곤 한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질려버리기도 하고.) 이 곳에서의 나는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노력했다. 해외에 나오게 되면 모든 계급장을 떼고 진짜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그 말은 정말 맞는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꼭 미련하게도 경험해봐야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소 같으면 올해도 한 게 없네,라고 말했겠지만 아니다. 나는 2019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출국하기 일주일 전까지도 돈을 벌었고, 오자마자 겨우 적응한 시차를 다시 돌려서 기말고사를 쳐냈고, 평생 해보지도 않은 육체노동을 몸이 바스러져라 해냈고, 손님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컴플레인 리뷰 속에서도 빛나는 나에 관한 칭찬!). 그리고 이 거지 같은 날씨와 쓰레기 같은 체력에도 불구하고 나를 돌보기 위해 노력했다. 음, 그래 나는 올 한 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일이다. 어마어마하게 날이 서 있던 나 같은 사람도 점점 세상 풍파에 무뎌진다. '그러려니'를 할 수 있게 된다. 분노해야 할 지점에서 그러려니, 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금 무디게 사는 것은 개인의 정신건강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뭐가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 경험이 쌓일수록 좀 더 판별하기 쉬워진다. 그만큼 겪은 일들도 많았다는 것이겠지만, 딱 그만큼 위험을 판별할 능력이 더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엔 그렇게나 무서웠던 나이 듦이, 지금은 좀 괜찮다. 1~20대에 느꼈던 미친듯한 불안감은 마치 반동과도 같이 서른이 되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단박에 사라졌다. 오죽하면 타 부서 절친에게 1월 2일 첫 근무일에 벌컥 문을 열며 "나 서른이다!!!"라고 외쳤었을까!
그렇게 2년이 지났다. 늦은 생일 탓에 제 나이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딱 열흘 남짓인 사람이라 지금의 시간은 항상 묘하게 두근두근하다. 뭐, 이곳에서야 뭐가 어찌 됐든 내년이 되어도 아직 서른 하나일 테지만.
서른 하나의 나는 과연 어떤 궤적을 그려낼지 기대가 된다. 정해진 것 하나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고 이곳에서의 시간은 너무나도 힘겹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한 템포 쉬어가며 전환점을 맞이하기엔 필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곧 다시 두 살을 더 먹어버릴 테지만, 그때까진 다시 온 서른 하나의 나를 즐기며 충실히 살아야지. 하긴, 충실하지 않으면 뭐 어떠랴! 그 모든 것을 합해 다 나인 것을!
또한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아있는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초특급 아싸이지만 이 곳에서 나의 생일 파티 초대장을 보내주는 좋은 지인도 만나고(그러나 당연히 초내향 아싸이므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생일 선물을 주문했으나 늦게 도착할 거라 미안하다고 하는 영혼의 쏘울 메이트도 만났다. 이미 한국에 돌아갔지만 생일 축하를 해준 귀염둥이 전 룸메도 만났다. 이 곳에서의 인연은 정말 신기루 같아서 그렇게 친하게 잘 지내다가도 돌아서면 이별이다.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 인연이 끊어지곤 하는 곳이다. 그런 상황에서 극소수이지만 꾸준히 인연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물론 한국에서 나의 안부를 걱정해주고 축하해준 감사한 사람들이야 당연하지만! 이렇게나 까탈스러운 인간과 그렇게나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줘서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