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안연 19장
2019년 가을쯤에 새로운 프로모션이 있었다. 배달시간 이내 배달 완료 시, 거리에 따라 500~1,500원을 더 준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동안, 이 이벤트가 적용됐다. 건당 평균 천 원 정도를 더 준다는 말에 대부분이 배달시간을 달성하려 했고, 나 역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간혹,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걸 먼저 갖다 주고, 어차피 늦는 건 두세 번째로 갖다 주는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기도 했다. 단돈 천 원이지만, 서민 계층의 삶을 살아가면서 신경 쓰이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달 후, 이 이벤트성 프로모션이 없어지고, 이 자료를 토대로 배달 구역별 시간 설정이 각기 다르게 적용됐다. 전에는 다 같은 배달시간을 적용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아마도 이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한 달여 동안 우리의 스피드를 체크한 것이리라. 기존 데이터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위험하게 돈을 더 주면서 라이더들을 질주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결과를 토대로 가까운 지역의 배달 시간은 20분 정도로 단축됐다. 그러면 음식 조리 10분을 빼면 배송시간은 10분이 남는다. 조리가 오래 걸리면 배달시간은 더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 시간 안에 배송하지 않아도 괜찮다. 센터에서 시간 달성을 요구한 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피크시간이다. 시간이 초과하여 빨갛게 변한 콜을 보고서,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을 라이더는 또 얼마나 될까.
그런데 몇 달 후에는 배민에서 '번쩍 배송'이라는 서비스가 추가로 신설됐다. 빠른 배송에 대한 업체들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도미노 피자의 30분 내 배송, 쿠팡의 로켓 배송, 배민의 번쩍 배송 등등 이름을 달리하면서 그 족보를 계속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빠르게 다니기를 요구해왔다. 그렇게 빠르게 다닌 결과, 고객들은 지금의 배달 속도가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 건을 배달하는데, 몇 번의 도로교통법을 위반해야 할까. 물론 과한 콜 욕심으로 사거리 신호에서조차 질주하는 사고유발 라이더들도 있다. 하지만 일부는 일부일 뿐이다. 그런 일부는 차치하고, 과연 이런 시스템의 구조하에서 대부분의 라이더는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신이 속한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초월해서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서민은 몇 명이나 될까. 다음의 논어 구절이 있다.
草上之風(초상지풍), 必偃(필언).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입니다.
논어에서 유명한 구절 중 하나다. 풀은 큰바람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서민은 ‘돈’이라는 바람에 손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다. 배달 이륜차 사고율이 낮아지지 않고 늘 그 모양인 것은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풀들에만 너무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12월부터 오토바이 사고 예방을 위해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는 고용노동부와 경찰청의 광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씁쓸하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업체들은 단속하지도 못하면서, 바람이 불면 누울 수밖에 없는 풀을 단속하기만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업체들은 자기들이 벌금 내는 거 아니니까, 계속해서 풀들을 유혹할 뿐이다. 그렇게 딱지를 열심히 끊어봤자, 경찰 본인들의 직업적 쓸모를 느끼는 것과 일시적인 효과 이외에 무엇이 크게 달라질까.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그런 구태의연한 모습을 볼 때마다, 그냥 벌금 수입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개인적으로 아니기를 바라지만, 혹여 억울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소송을 걸만한 돈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냥 손쉽게 취급하는 것은 경찰이나 업체나 한통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은연중에 서로 마음을 합쳐서 손쉬운 방법만을 고수한 채, 손쉬운 사람들만 상대하고 있는 듯하다.
겉으로 보이는 포장지는 교통질서 확립이고, 본질적인 이유는 약육강식의 자연 논리를 따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