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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Dec 23. 2019

양심

맹자-고자(상) 11장

『주역』 64괘를 배우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바르면(貞) 길하다’ ‘바르면(貞) 이롭다’ ‘바르면(貞) 허물이 없다’ 등이다. 64괘처럼 온갖 상황의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바르기만 하다면, 모든 상황이 길하고 이로운 쪽으로 흘러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잘못은 없게 된다는 말이다.     


종로중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네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름 20년에 가까운 배달 경력을 자만하며, 그런 건 초보나 사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동료 중에 네비를 따라 곧잘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분은 초보인가 보구나’라고 단순히 치부해버릴 뿐이었다. 나보다 낮은 레벨로 낮추어 본 것이다. ‘고레벨’이라고 자처한 나는, 출발지와 목적지만 알면 다른 도움 필요 없이 알아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빙자한, 자만함이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멀다 하고 경찰에게 딱지를 끊는 일이 생기다가, 결국 면허 정지까지 당해 교통 교육까지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문득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면허 정지를 겪고 나니, 뭔가 스스로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배달 사정상 마음이 급해 부득이 도로교통법을 어길 때도 있겠지만, 일단 바르고 안전히 다닐 수 있는 길을 한 번쯤은 몸에 익혀봐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첫 번째는 바른 도로이용법을 익히는 것이 순서였다. 그동안 네비 없이 다니다 보니, 가다가 유턴이 안 되거나 좌회전이 안 되면, 횡단보도를 통해 건너기도 하고 길을 만들어서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네비의 도움을 받으며 대학로 지역의 도로 이용법을 익히고 나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유턴할 수 있는 구간이 있는데, 바보같이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몇 초 빠르게 갈려고 일방통행을 역주행하기를 곧잘 했었는데, 네비를 따라 내 방향에 맞게 다녀보니 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넓어져 편안함이 느껴졌고, 그로 인해 당당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마음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나는 왜 그동안 잔머리를 굴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떠안고 힘들게 다닌 걸까. 왜 경찰이 있나 없나를 동서남북으로 살피면서 눈치 보며 다닌 걸까. 그로 인해, 그동안 내 자존감은 얼마나 작아진 것일까. 남들 눈치 보며 다니는 버릇이 왠지 이런 평소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스스로가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버는 몇천 원 몇만 원의 ‘돈’과 바르게 행동함으로써 얻어지는 ‘당당한 자존감’ 중에 무엇이 더 소중할까. 나는 몇 푼의 돈과 조금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무엇을 길바닥에 흘리고 다닌 것일까. 너무 큰 손해를 보며 살아온 것 같다.     


바르지 못한 연속된 행동으로 스스로 내던져 버린 그것.

누군가는 양심이라고 하고, 당당함이라고도 하고, 자존감이라고도 하는 그것.     


맹자는 나 같은 사람 위해, 다음과 같은 걱정의 마음을 적어놓았다.     


孟子曰(맹자왈) 仁(인) 人心也(인심야), 義(의) 人路也(인로야). 

舍其路(사기로) 而不由(이불유), 放其心(방기심) 而不知求(이부지구), 哀哉(애재).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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