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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Nov 23. 2020

마트로 직행하는 패기

논어 안연 6장

황학동 B마트 전담 라이더가 되어, B마트 주문 건을 중심으로 콜을 빼고 있는 요즘이다. 대학로에서 매의 눈으로 콜을 잡아, 분주하게 콜을 처리하며 다니던 때 하고는 좀 다르다. 그때는 택시처럼 대중없이 다녔지만, 지금은 버스 종점처럼 다시 돌아가야 할 마트가 있다. 대학로 주거지에서 주문하는 마트 콜이 많아서, 주로 대학로행 콜을 한꺼번에 잡아 한 번에 뿌리는 식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동선이 복잡하게 얽히지 않으니, 대학로에서 음식배달을 할 때보다 느긋하고 수입은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달콤한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대학로로 들어가는 콜을 한꺼번에 왕창 들고 이 집 저 집에 뿌리던 와중에, 마지막 한 곳의 주소가 수정되는 일이 발생했다. 성균관대 경영관 주문 건이었는데, 정릉동으로 주소가 수정된 것이다. 학생들이 가끔 주소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시키는 경우가 있어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정릉동은 우리 구역이 아니다. 북부센터 관할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근처인 거 같지만 15분이나 걸리는 꽤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고객센터 상담원도 지도를 힐끗 넘겨보고서 가까워 보였는지 나에게 말했다.     


“근처로 확인되는데 가능하실까요? 불가능 하실까요? ㅠㅠ”     


이런 상황을 대할 때면, 나는 종종 누가 어떻게 손해인지를 떠나서, 일단 빠른 일 처리만을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자연스럽게 내가 가는 게 수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마지막에 ‘ㅠㅠ’라는 동정 어린 이모티콘에 괜히 책임감이 느껴졌다. 보통은 그냥 가볍게 쓰는 채팅 용어이지만, 나는 괜히 마음에 걸린다.

일에 있어서 늘 번개 같은 빠른 판단을 추구해왔던지라, 내가 짊어질 짐도 아닌 걸 짊어지는 일이 많았던 인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곰곰이 생각해본다. 잠깐의 생각이 상황정리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선택에 앞서 30초 정도 가만 생각해보면 정리가 된다.      


‘저곳은 우리 구역이 아니라 가지 않아도 된다. 만약 내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분명히 이 물건은 마트로 회수가 될 것이고, 그쪽 북부센터 담당 라이더가 새로 정해질 것이다. 추가 배달료를 받고 정릉동까지 갈까, 회수 배달료를 받고 그냥 마트로 돌아갈까? 나는 어차피 마트로 가야 하므로, 마트 회수배차를 받는 게 이익이 된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해야 할 말이 정해진다.

“힘들 거 같아요.”              


이렇게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기 이전에는 늘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남이 하는 부탁은 내가 감당해 내야 할 운명처럼 생각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논어』에 다음 구절이 있다.


子張問明(자장문명).

子曰(자왈) 

浸潤之讒(침윤지참) 膚受之愬(부수지소) 不行焉(불행언), 可謂明也已矣(가위명야이의). 

浸潤之讒(침윤지참) 膚受之愬(부수지소) 不行焉(불행언), 可謂遠也已矣(가위원야이의).

자장이 밝음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서히 젖어 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닿는 절박한 하소연이 통하지 않는다면, 밝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서서히 젖어 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닿는 절박한 하소연이 통하지 않는다면, 멀리 본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질문을 했던 자장은 공자 제자이다. 아마 자장도 남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듯하다, 공자는 그런 자장의 부족한 점에 비추어, 밝음에 대해 저렇게 정의해 준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특이한 대답 방식인데, 그 제자의 기질에 맞춰서 그 정의를 달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장이기 때문에 ‘밝음’에 대한 정의를 저렇게 해준 것이다.     


나 역시 공자의 말처럼 남이 하는 참소와 하소연에 곧이곧대로 넘어가는 아주 쉬운 사람이었다. 참소와 하소연 수준이라고 할 것도 없이, 부탁하는 순간 바로 응하는 바보 수준이었다. 후에 상황상 힘들겠다는 것을 깨닫더라도, 그때 응했다는 책임감에 휩싸여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을 해나갔다. 그렇기에 나의 이런 성격을 곧잘 이용하던 사람도 알게 모르게 있었을 것이다. 나름 절박한 참소와 하소연의 모습으로 위장하고서!     


낮 피크가 끝나고 저녁 피크를 준비하기 전에, 집이 있는 필동으로 돌아가 체력보충을 했다. 쉬었다가 내려오는 길에 앱을 켜보았다. 필동에 들어온 주문 콜이 시간이 초과 되어 급하다는 듯, 빨간색으로 변해 점점 익어가고 있었다. 왠지 상황상 지금 내가 빼지 않으면, 이 콜은 아무도 갈 사람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누가 하소연하는 걸 넘어, 상황상 혼자 또 곧잘 이런 책임감을 짊어지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가고 싶지 않은 콜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주문이 취소되든 어찌 되든 간에 내가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급여제 직원이나 똥콜 전문 라이더들이 있기에, 내가 지나쳐도 어떻게든 해결된다. 고객님이 좀 늦게 받거나 취소할 수도 있지만 이 한 콜에 연결된 그 이해관계들을 내가 애써 챙겨야 할 필요는 없다. 

예전에 이런 콜들을 못 지나치는 마음에 자선해서 열심히 처리하던 동료가 있었다. 그런데 추후에 이런 의무감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며 남긴 말이 있다. 

“이 바닥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1도 필요 없어.”     

그렇게 나는 마트 전담 라이더답게 과감히 마트 꿀콜을 잡고 필동을 외면했다. 그러고 나서 동료들과 수다 떠는 단톡에 메세지를 날렸다. 

“김치만 선생과 눈 내리는 집 콜을 버리고, 마트로 직행하는 패기!”     


큰형님은 이에 응답한다. 

“패기 아주 좋아. ㅎㅎ”     


이 패기라는 말은 큰형님이 종종 즐겨 쓰시는 말이다. 새벽 4시까지 술을 먹고 찜질방을 나와 해장을 하던 중에, 형수님께서 생존 확인차 아침부터 전화를 거셨던 적이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신 후, 지금은 받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셨는지 그 전화를 과감히 받지 않으셨다. 

“병선아 봤어? 형수 전화 안 받는 거? 형 패기 대박이지?!”     


공자가 말한 ‘밝음(明)과 멀리 봄(遠)’ 안에는 과감히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행동력, 즉 패기까지가 들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판단만 하고 마음이 약해 우물쭈물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잠깐의 시간을 들여 밝은 판단력으로 멀리 보아, 패기 있는 행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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