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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21. 2020

엔딩 할 때까지 언제나 헤딩이다

진로에 대해 오래 고민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 있었다. 대학 졸업반일 때 꿈이 흔들리긴 했지만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금방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도 취업의 문턱은 정말 높았다. 수없이 이력서를 넣고 면접의 문턱도 못가 떨어졌다. 그래도 상처 받지 않았다. 목표지점에 꽂힌 깃발이 언제나 보였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입사해서는  강물에 튜브를 띄운 듯 흐름을 따라 나아갔다. 경력이 쌓이고, 더 좋은 조건에 이직도 하고, 승진도 했다. 직장 상사나 클라이언트에게 호되게 깨지기도 하고 패배감을 맛보는 날도 있었지만 길게 보면 조금씩 성장하던 나날들이다. 조금씩 인정받는 날도 늘어갔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다행히 잘 해내고 있었다. 서른여덟 살의 봄까지가 그랬다.

밑그림이 그려진 인생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앞날을 대충 예측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급하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내가 궁금해 조급해진다. 스무 살에도 안 하던 전전긍긍을 하려니 답답했다.



멀리서 두 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새해 인사도 못해 서로 안부를 물었다. 아이들 자라는 얘기, 남편들 안부를 거쳐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나누었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이다 보니 우리는 서로를 누구보다 믿고 있다. 말 안 해도 잘하고 있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다. 그런 믿음은 언제나 서로 응원하게 한다. 내 갈비뼈가 부러져 몇 달을 일 못하고 쉬고 있을 때도, 친구가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걱정보다는 응원을 했다. 그런 친구에게 막막함에 대한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가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어.”

“ 잘 될 거야”


“마흔 넘어 맨날 맨땅에 헤딩이다. 나아지는 것 없이”

“우비, 받아 적어라~”


“그래 읊어봐라”

“엔딩 할 때까지 언제나 헤딩이다”


“명언이네~ 슨생님~”

“요새 명언이 줄줄 쏟아진다



내일은 어떤 날일지, 내년엔 뭘 할지, 쉰 살이 되면 또 뭘 해야 할지 스무 살에도 해보지 못한 고민을 이제야 한다. 친구의 말처럼 아마도 늘 헤딩을 하고 있겠지.  ‘이왕 할 거면 단단한 머리로 겁내지 말고 세게 들이받아야지. 엔딩 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나니 사십 대에도, 육십 대에도, 팔십 대에도 세상에 헤딩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스무 살 같아 보여 오히려 좋았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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