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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22. 2020

엄마의 칭찬에 살림꾼이 된다

우리 집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기계는 세탁기와 건조기이다. 매일 한 바구니 가득한 아이의 옷과 수건들. 색깔 구분 지어 빨아야 하는 검은색류 옷들과 흰 옷들. 하루라도 빨래를 건너뛰면 세탁실 바구니마다 빨래가 수북이 쌓이다 못해 산을 이룬다.

매일 빨래를 하고 나면 개는 일이 만만치 않다. 양도 양이지만 옷의 종류에 따라 개는 방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양말과 수건은 동그랗게, 티셔츠와 바지는 각을 잡아 네모 반듯하게 접는다. 같은 종류라도 조금씩 디자인이 다른 옷들을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접으려면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한다.

딸의 살림 사는 방법은 엄마의 방법과 꽤 닮았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집안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그렇다. 엄마 일을 자주 도왔다면 더 비슷할 것이다. 엄마를 도와 빨래를 개면 언제나 마무리는 엄마가 하곤 했다. 엄마가 쌓아놓은 옷들은 반듯반듯한데 내 것은 모양이나 크기가 들쑥날쑥했기 때문이다. 내가 접어놓은 수건은 금방 힘 없이 풀리는데 엄마가 접은 것은 욕실 선반에 들어갈 때까지 가지런했다. 엄마는 나의 살림 선생님이었다. 엄마만의 방법들을 눈여겨보았다. 그 방법들이 고스란히  집안일하는 나의 기술이 되었다.

빨래를 개는 일은 설거지나 청소에 비해 약간의 기술이 더 필요하다. 그냥 접는다고 해서 반듯해지지가 않는다. 종이 접기에 순서와 모양이 있는 것처럼 빨래를 갤 때도 접는 순서와 방법이 필요했다. 조그마한 아이의 옷을 접을 때는 더욱 그렇다. 크기도 작지만 대부분 아랫도리 윗도리가 세트로 된 것이 늘 문제였다. 윗도리 아랫도리를 따로 접어 각각 서랍에 넣어두면 대혼란이 찾아온다.  윗도리와 세트인 바지를 찾으려고 서랍 속 옷들을 들추는 동안 가지런함은 사라진다. 내가 집이라도 비워 남편 혼자 아이를 보는 날에는 짝이 맞지 않는 어색한 옷을 입힐 때도 많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상하의를 한 조각으로 접는 방법이었다. 접었을 때 크기가 작은 바지를 먼저 반으로 접고 다시 두 번 접어 네모 모양으로 만든다. 그리고 티셔츠의 가슴팍에 접은 바지를 놓는다. 티셔츠를 접을 때는 가운데 놓인 바지를 기준으로 세로로 삼등분해서 접는다. 마지막으로 기다란 모양의 티셔츠를 반으로 접어 바지를 완벽히 감싼다. 이렇게 하면 바지와 티셔츠를 한 덩이로 접을 수 있다.
한 덩이로 접은 옷을 서랍에 차곡차곡 넣으면 상하의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고, 아이의 옷을 누가 입히더라도 색깔 맞춰 깔끔하게 입힐 수 있다.

어느 날은 친정에 며칠 머물 작정으로 짐가방을 가득 싸서 고향집으로 갔다. 엄마는 내가 캐리어를 열어 짐을 꺼내는 동안 옆을 지키셨다. 아이의 옷을 꺼내는 동안은 한 세트로 가지런히 접힌 옷들을 보며 감탄하신다.

“딸, 옷 한번 멋지게 접었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응~ 이렇게 접으니까 꺼내 입히기 편하더라고요.”
“엄마가 한 수 배워야겠네~”

살림살이에 익숙하지 않을 딸이 밥은 잘 만드는지, 집안일은 반듯하게 하는지 늘 궁금하신 엄마는 이런 순간을 통해 조금 안심하신다. 엄마의 칭찬은 빨래를 갤 때마다 떠오른다. 내 기준에선 내공이 비범한 살림 장인의 칭찬이다. 끝도 없는 집안일을 하며 내 실력도 나쁘진 않구나 하는 우쭐함이 생긴다. 그 자신감으로 오늘도 눈 앞의 빨래 산을 바라본다.  기술 들어갈 시간이다.  엄마 손이 닿아 반짝거리는 친정집처럼 우리 집도 구석구석 내 손이 닿아 빛을 찾겠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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