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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23. 2020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조카가 고3인데 어떤 학과에 지원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를 꿈꾼다고 했다. 어떤 전공이 카피라이터가 되는 데 도움이 되냐는 물음이었다. 광고 만드는 걸 배우고 싶으면 광고홍보학과에 가면 될 것이다. 글 쓰기를 배우거나, 영상매체를 공부하는 학과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몇 개의 전공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광고를 만드는 데 전공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만난 카피라이터들만 해도 광고를 전공한 사람도 있지만 전혀 관련 없는 공부를 한 사람이 더 많다. 나 역시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광고 카피의 ㄱ 자도 배우지 않았다. 친구에게 말했다. 어떤 전공이든 상관없으니 가장 배우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라고. 대학 4년 동안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즐거움이 클 것이고 꿈은 그동안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학생의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평소 철학을 좋아한 학생은 모험이다 치고 철학과에 지원한다. 자신에게는 무척 재미있는 철학을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주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온라인에 쓴 글을 올리자 사람들의 호응이 조금씩 일어난다. 마침 세상은 인문학에 관심이 높아져 여기저기서 인문학 관련 강의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느 날 학생에게 메일 한 통이 온다. 어느 방송국 작가이다. 온라인에 게시되고 있는 글을 보았다며 자신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줄 것을 부탁한 내용이다.  학생은 아직 학생 신분이지만 방송에 출연한다. 철학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일은 이제 학생에게 너무나 쉽다. 방송은 큰 호응을 얻는다. 그리고 더 미래엔 도전해보고 싶었던 광고회사에  지원한다. 입사 면접을 보는 날 경력 란에 쓰인 방송에 대한 한 줄의 이력 덕에 다양한 질문을 받게 된다.

눈 앞의 선택을 두고 고민하는 학생에게 이런 얘길 했더라면 공감했을지 의문이다. 너무 긍정적으로만 상상하기도 했다. 그치만 꽤 괜찮은 흐름이었다. 지나 보면 그렇지만 당장 눈 앞에 있을 땐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테니까.

인생이 꼬일 때가 있다. 잘 나가던 내 길을 누군가 막기도 하고, 잠깐 돌았는지 좋은 걸 다 마다하고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부산으로 가겠다고 할 때 모두가 말렸다. 옳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좋았다. 오래 떨어져 살던 남편과 부산에서 같이 살 생각을 하니 눈 앞에 보이는 승진도, 연봉도, 커리어도 별 것 아니었다.

가끔 회사를 관두지 말걸 후회하는 날도 있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아쉬울 때 더욱 그렇다. 후회는 잠시다.  ‘앞으로 뭐하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때 부산에 오지 않았더라면 먼 훗날의 나를 조금 늦게 챙겼을지도 모른다. 현실이 불안하지 않았으니까. 필라테스에 지금처럼 푹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모험이고 오늘 하루는 소중하다.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는 기차를 타고 그저 즐거웠던 오늘 하루도 나쁘지 않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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