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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30. 2020

멍멍이를 대하는 너와 나의 자세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엔 개가 많았다. 동네 다른 집들도 도둑 퇴치용으로 집집마다 개를 키웠다. 우리 집을 지킨  개들은 진돗개, 불도그, 요크셔테리어, 누렁이, 깜순이 등이다. 4~5년마다 개가 바뀌었는데 집을 나가기도 하고, 도둑맞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주로 큰 개를 키웠고, 아버지는 작고 귀여운 개를 좋아했다.


나는 개가 싫었다. 우리 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개의 눈에 어린 나는 우리 집에서 서열 최하위의 만만한 상대였을 것이다. 같이 놀면 수준이 딱 맞아 보였겠지. 그래서인지 개는 나를 좋아했다.


개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가끔 할아버지가 자유시간을 준다며 목줄을 풀어놓을 때였다. 줄이 풀린 개는 동네를 활보했다. 바닷가에서 노는 나를 발견하면 신이 나서 달려왔다. 멍멍 짖으며 나를 불러댔다. 달려오는 개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울며 불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바닷가를 달리고 개는 내 뒤를 쫓는다. 멀리서 보면 플랜다스의 개처럼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가까이 보면 영화 '괴물'의 도망 씬에 가까웠다.


개와 나의 달리기는 내가 길 가운데 엎어지면 끝이 났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고 온 동네 쩌렁쩌렁한 울음소리에 일하던 어른들이 달려왔다. 개와 나의 달리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동네 사람이 지켜본 울음의 질주로 한순간 울보 겁쟁이가 되었다. 매해 비슷한 일을 겪으며 자랐다.


지금이야 애견인들의 에티켓이 일상이 되었지만 집에서 기르는 동물의 에티켓이란 게 있을 리 없었던  30년도 더 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자란 내 이야기다.


어린 날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길 가의 작고 예쁜 강아지들을 보아도 이미 멀리서부터 경계를 한다. 커서는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을 했기에 더 이상 개에 대한 공포가 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복병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결혼을 하고 다시 개를 마주할 일상이 생기고 말았다.


 




시댁 마당에는 진돌이가 있다. 진돌이는 시부모님이 자식처럼 아까는 순수혈통 진돗개이다. 낯선 이에겐 용맹스럽고 가족에게는 사랑둥이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로 가득한 나는 사실 시댁에 갈 때마다 겁이 난다. 그래서 진작에 시댁 식구들 앞에서 개에 대한 겁밍아웃을 했다. 다행히 시부모님은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진돌이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돌봐주신다. 멀리 있는 진돌이는 두렵지 않고 멋지다.


설을 시댁에서 보내는 동안이었다. 온 식구가 마당에 나갈 일이 있어 나도 따라나서던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집 밖으로 나오며 현관문을 닫는데 옆으로 무언가 쉭 지나갔다. 진돌이가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지나치며 나를 본 진돌이는 급히 유턴을 해 내게 달려왔다. 그는 반가웠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의 추격전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 나는 더는 뛰지 않았다. 이런 상황일수록 뛰면 위험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얼음이 된 상태로 남편을 불렀다.


"자기야~~~악!! 진돌이~~~~ 아아 악!"


내 앞에 다가온 진돌이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손등을 마구 핥았다.


"아~~~자기야~~~악!!"


앞서가던 남편이 달려온 몇 초가 몇 년 같았다. 마당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남편은 진돌이를 쫒고, 나는 겁이 나 울먹이고, 어디선가 고함치는 아이의 소리도 들렸다. 남편과 시아버님의 도움으로 진돌이는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의 해프닝이었지만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공포였다. 그걸 알리 없는 진돌이에겐 오히려 미안했다. 좋아서 다가온 걸 비명으로 대했으니. 대문 옆을 지나치며 진돌이에게 사과했다.


"진돌아, 내가 놀래서 미안해. 너도 놀랐지?"




시댁에서 돌아온 며칠 후 아이가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엄마, 매?매? 우스닐 이떠?(왜?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일?"


"멍멍 무스어? 도와조 해떠?"

"아~ 응! 진돌이가 무서워서 도와줘 했어"


"아빠가 멍멍 가! 가! 해떠?"

"응 아빠가 엄마 도와줬지"


"율이가 집에 드러 가! 했어!"

"정말? 고마워~~"


"엄마, 안돼~~!! 멍멍 율이 친구자나~~"


길 가의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비둘기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달려가고, 도망가면 아쉬워하는 아이. 멀리서도 주인과 길 가는 멍멍이를 보면 반가워 손 흔드는 아이. 동물을 좋아하는 율이의 마음은 예쁘다. 네 살이 된 새해부터 엄마를 지키기도 하고, 무서웠던 엄마를 달래기도 한다. 나의 두려움이 아이에게 물리지 않아 다행이다. 이런 천진함에 멍멍이와 비둘기들이 평화로워 보이다가도 두려움을 극복하기는 힘들다.


미안해 율아, 아직은 네 친구와 친해지긴 힘들겠어.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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