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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월 Dec 21. 2020

중년 일기 3

Shame on you.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가 쓴 <마녀>에서는

 마녀 재판소에서 종교적인 내용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나면 마녀라 일컫는 피고를 세속 당국에 넘겨 처벌을 받게 했다고 한다.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지 처벌은 할 수 없으므로 처벌의 몫은 세속 당국에서 하게 했다. 마녀 재판소의 참여한 재판관 신부들은 자신들이 이단과 맞서 악마의 세력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뜻을 지켜낸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2010년에 개봉한 < 시즌 오브 더 위치-마녀호송단>는 흑사병의 원인을 마녀 때문이라 몰고 가는 교회를 위해 기사 베이맨(니콜라스케이즈분)이 마녀를 호송하며 벌어지는 얘기를 그린 판타지 영화였다. 종교적 공포심을 이용하여 정치 권력자들이 민심을 정리하는 분위기를 잘 묘사했다. 지금 시대에서 보면 그 시대는 종교의 허울을 쓴 광기의 시대라 부르기 충분했다.

판타지 성향의 영화에 잘 어울리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시즌 오브 더 위치>

 얼마 전, 윤석열 퇴진이 검찰개혁이라는 성명서를 낸 f가 속해있는 정의구현 사제단과 수녀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작금의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다니, 그 정의란 말이 권력 앞에서 이렇게 달라진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스의 600만 명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아렌트는 피고석 아이히만에게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고 놀랐으며 아이히만이 자신이 저지른 일과 그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데에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이끌어내 학계의 파장을 주었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평범한 악에 대한 통찰력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일생을  그린 영화 2012년  <한나 아렌트>


 10여 년 전에 한 모임에 나갔다. 성당에서 아주 잠깐 교리교사를 했었는데 그때 멤버들이 대학생 때 그 동네를 떠났던 나를 어렵게 수소문해서 초대한 것이다. TV에 간간히 나왔던 방송국 기자였던 나의 남동생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다고 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교사 중에서 가장 잘생겼던 성당 오빠가 신입생 모두를 나이트클럽에 데려간 일이 있었다. 순전히 춤만 추는 곳이었는데 이름은 맨하탄이었다. 맨하탄 입구부터 고막이 찢어질 듯 음악이 나왔고  그 시끄러움에 흥분하여 마구 춤을 추며 10대를 마감했던 황홀감이 기억난다. 오랜 후에 미국 뉴욕, 맨해튼을 가보니 그때 나이트클럽이 생각났다.  오래된 유적지 하나 없는 곳인데도 전 세계에서 온, 그렇게 많은 관광객을 한꺼번에 받아낼 수 있는 현대 도시로서의 맨해튼에 대한 놀라움과 어지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분엔 낮밤이 바뀐 시차도 한몫했다.

 잘생겼던 그 성당 오빠는 생각보다 여자들에게 인기는 없었다. 그래도 성당에서 평강공주 같은 심성을 가진 후배를 만나서 결혼생활은 순조로워 보였다. 사회생활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틀림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를 많이 베풀었을 사람이다. 그 날 모임도 그 오빠가 주선하는 자리였다. 살아온 날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니 현재의 사정은 무척 딱해 보였다. 모두들 술을 한잔 걸치고 옛날이야기를 하다 거기에 있는 모두가 f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거의 모두가 가톨릭 교회 하고는 삶의 거리를 두고 살고 있었다. 그중 몇 명은 부모님이 그 동네에 아직 살고 있어서 가끔 OO성당에 들른다고 했다. f가 신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넉넉지 못했던 성당 사람들은 f를 한마음으로 신부로 길러냈는데 지금은 그 자부심보다는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정치신부로 기억하고 있었다.  f 는 어떻게 신자들에게 영성적으로 봉사할 지보다 외부의 정치활동에 정신을 더 쏟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성당에서는 어린 시절 선, 후배였었던 몇몇 오빠들에게도 깍듯이 신부라는 위치로 대접받기를 바란다고 서운한 듯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말했다.

  다행인 것은 거기 나온 어느 누구도 나와 f의 관계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다들 시치미를 떼는 건지, 들었었던 풍문을 본인에게 확인하기 어려워서인지 분위기는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여러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그날 S가 일찍 죽었다는 소식에 내가 충격을 받았다. 죽은 이유는 병명이 확실하지 않은 쇼크사였다고 하는데 결혼은 하지 않았고 s의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세상을 떴다는 얘기였다.


그 후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인생의 기억이  이 글들처럼 생생하더라도 여기서 신부 f 에 대한 실망감과  s 에 대한 미안함을 소설가 하루키처럼 흉내내어 글쓰기는 어려운 것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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