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을 잡고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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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에게 첫 번째 글에 대한 피드백을 구했을 때, 반응은 꽤 좋았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아니면 부담 없이 쓴 보상인지는 몰랐지만 덕분에 두 번째 글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 글인 만큼, 두 번째 글은 이 기세와 퀄리티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두 글의 성격이 다르도록 구성하기'. 잠정적으로 그렇게 정해놨었다. 우스갯소리로 SM이란 연예계 회사는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준비해봤어."의 전략으로 다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나 역시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어떤지 모르니,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취향일 수 있도록 글을 구성해야겠다 생각했다.
'구조와 묘사가 살아있는 글'은 메시지가 비교적 쉽고 직관적이었기에 선택한 전략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려운 메시지를, 그니깐 내가 차곡차곡 발전시킨 아이디어를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집중해, 새로운 관점을 선물할 수 있는 그런 글 말이다.
정말 거만한 생각이지만, 대화에는 그 사람의 삶이 냄새처럼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휘력, 문장력은 물론이고 척척 진행되는 두뇌 속 논리 체제는 언뜻 일괄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대표한다. 왜, 말을 나누다 보면 적어도 얘가 이과인지 문과인지를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는가. 추상적인 관념과 구체적인 언어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에 아마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깊이가 있는 사람의 말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우물에 두레박이 떨어지듯, 그들의 말에는 고민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울리기 때문이다. 평소에 사유와 고뇌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는 기발하고 참신하다. 그들은 보편적인 현상을 제마다 방법대로 해석하고 풀이한 끝에 세련된 발상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 말마따나 세련됨은 투박한 것을 무수히 갈고닦은 결과니깐 말이다. 이런 까닭에 한 분야의 전문가들, 특히 그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구는 이들의 말에게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이다. 가령 물리학자, 스님이나 댄서처럼 말이다.
나만의 시선을 관철하는 글을 쓰려면, 내가 깊이와 열정을 가진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아한 메시지를 주기 어려울뿐더러,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한 연유에 문장마다 내 의심과 불안이 뚝뚝 흐를 것이다. 나한테 우물이 뭐가 있을까. 물리, 팝핑 이거 두 개 말고는 없는데.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그래서 춤으로 세상 일부를 설명하는 방식의 글을 적었다. '춤을 통해 깨달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그 주제였다. 춤을, 그것도 프리스타일에 추다 보면 가끔 틀 안에 갇힌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팔, 다리, 몸, 목과 같은 동작적인 측면에서도, 속도나 질감 같은 느낌적인 측면에서도, 또 음악을 듣는 방식에서도 분명 내 춤은 N차원의 자유로운 춤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늘 추는 대로만 춘다. 이걸 댄서들은 어떻게 깨어나가는지, 그로부터 자유를 온전히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적어놓은 것이 바로 두 번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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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수상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말년이라 근무를 빠져, 생활관에서 쉬고 있었는데, 영 발표가 없자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후임에게 물어보았었다. 없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상 받지 않을까 자만했었던 것이다. 뭐, 앞서 말했던 것처럼, 브런치에 올릴 글이 두 편이나 더 생긴 거지.
전체를 돌이켜보면, 재밌는 기간이었다. 작가라도 된 것 마냥 글의 구성과 메시지를 고민하고, 막힐 때마다 다른 산문 책을 들여다보며 내가 막히는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배우고, 또 그 과정에서 내가 군생활에서 무엇을 배운 지 돌이켜보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사실 이러한 경험 덕에 군생활 마지막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