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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May 08. 2024

"오늘 내 속상 버튼을 또 하나 찾았다"

5/7 술자리에서...

Samskara는 자아가 경험하는 세상의 자극 중 차마 내 안에서 흘러나가지 못한 채 마음속 저장된 에너지 패턴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꽃봉오리가 닫힌 것처럼 마음속 한 켠에 잠자고 있다가 비슷한 패턴이 다시 자아에게 경험되면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무수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는 부정적일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다.

오늘 나는 동아리 술자리에서 내 부정적 samskara가 개화하는 경험을 했다. 히스 신입생 중 한 명이 물천 신입생이었는데 되게 당돌한 편이었다. 1학년 1학기부터 랩 인턴을 하려고 A 교수님에게 연락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면서 아직까지 연락 없다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그 신입이 말을 꺼냈다. '1학년이 무슨 인턴이야'라는 생각 옆으로 기시감이 느껴져 혹시 하고 물어보니 역시 서울영재고 물리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나름 선배랍시고 좋게 좋게 조언을 해주었지만 말하는 와중에도 나는 내 마음속 불편한 감정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자격지심이었다. 질투와 자책, 부끄러움, 아니꼬움, 부러움, 열등감 등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26살이나 먹고 20살 국대에게 자격지심을 느낀다는 게 또 부끄러웠다.
  일러바치는 모양새의 글이지만, 그 친구가 본인이 고등학생 때 학회를 가서 그 교수를 우연히 만났고 본인의 선배이름을 팔아 조금 친해졌으며 고등학생 때 했던 분야가 그쪽이라 지금 가면 그나마 특기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그의 당돌한 스토리에 나는 너무 셈이 났다. 또 고등학생이 이러는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자책감이 마구 떠올랐다. 특히, 나도 현재 1달째 이렇다 할 성과도, 열정도 없이 교수님에게 제대로 연락하지 못하고 있는데 1학년 학생이 이렇게나 공격적으로 잘 컨택한다는 사실이 많이 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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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긴 일이다. 자격지심, 자책감을 전혀 느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글과 이야기로 많이 배웠다. 실제로 그 학생이 물리하는 것을 옆에서 본 것도 아니며 분야가 겹치지도 않는다. 연구라는 것은 마라톤과 같기 때문에 본인 페이스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또 공부와 연구는 별개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근데 나는 왜 그 친구의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칠 만큼 불편했던 걸까. 그것은 결국 현재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이는 나라는 실체와 내가 내린 평가사이의 차잇값만을 말해줄 뿐, 절댓값에 대한 정보는 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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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한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본인을 가꾸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오르고 자신감이 오른다고 말이다. 20살의 나라면 그 말을 듣고 '반쪽짜리 자존감'이란 평을 (속으로)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26살의 그는 꽤 진지하게 이 조언을 받아들였다.

'제로베이스에서 자존감을 가지는 것은 사실상 세뇌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스스로의 멋진 점이 없는데 어떻게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하겠는가. 진실된 사랑도 시작에는 강한 이성적 끌림이 있었던 것처럼 자존감도 그럴싸한 내 모습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비슷한 방향성으로 생각을 전개해 보면, 나는 내 공부 능력에 있어서 떳떳하지 못한 것 같다. 내 고민을 내가 바라보면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며 식단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윤성빈이 하는 조언이 생각난다. 의지부족.
  '정말 그렇게 물리가 잘하고 싶었으면 물리를 더 하든가, 아니면 정 물리가 너 재능이 아니라 느꼈으면 나가든가. 항상 찡찡댈 뿐 그러고 너가 물리를 열심히 한 적 있어?'라는 말들로 나를 자주 몰아붙였다. 그럴 때마다 늘상 내가 했던 선택을 돌아보면 스스로를 자조하고 합리화하며 지내는 것이었다. 패배감과 함께 안주하며 또 스스로의 결함을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꾸 이 것을 곱씹으며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도 역시 정말 커다란 samskara가 내뿜는 에너지에 막 하염없이 휩싸여 이렇게나 긴 글을 썼다. 하지만 제목에서 적어놓았듯 이번엔 자책이나 다짐대신 다른 접근을 해보려 한다. 나에게 samskara를 알려준 책에서 추천했던 방법대로 말이다.

Samskara를 마주하면 사람의 가슴은 한없이 닫히거나 열린다고 한다. 가슴은 기의 요충지라 자아는 자주 그 감정을 본인과 동일시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저 신체의 경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samskara는 미처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했던 에너지였기 때문에 그것이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것은 이제야 samskara가 나갈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samskara에서 오는 감정을 거부해서도, 또 붙잡아서도 안된다. 그래서 자아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체 그것을 온연히 경험하며 미소를 지으면 자연스럽게 samskara는 사라진다.

말이 길었지만, 결국 오늘 나는 이 samskara를 안주로 명상할 거란 말을 길게 써보았다. 과연 이 방법의 성패는 어떻게 될지... 예전과 다른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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