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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사랑의 시간, 사춘기를 함께 건너는 법

<서평>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를 읽고

by 포도송이 x 인자


"여보, 지금 쟤 눈빛 봤지? 그냥 놔둬? 말아? 어떡하지?"

"그냥 놔두자. 자식은 손님이라고 하잖아. 잘 대접하고 보낸다는 마음으로 바라봐."


남편은 늘 그런 식이었다. 사춘기 딸에게 대항하며 몸부림치는 내 절규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딸을 손님 보듯 덤덤하게 바라보라니. 어떻게 딸이 손님일까. 열 달을 품고 세상에 내보냈다. 한때 내 몸의 일부였던 아이였다. 사춘기 딸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는 내게는 고구마 100개와 같았다. '차라리 말을 말지.' 본인은 중립이라지만, 딸 편만 드는 남편에게 섭섭했다.


1년 전, 아니 얼마 전까지도 딸의 사춘기는 우리 가족 모두를 서걱거리게 만들었다.


며칠 전, 따끈따끈한 신착 도서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김진용 작가의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파라북스, 2025년 10월 발행).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도서관이 직장이 되면서 원 없이 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책 제목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책은 많지만,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탐구한 책은 드물다. 물론 책 제목만 보고 하는 얘기다. 선물 받은 책이니 읽자 싶어 책 뒷면을 봤는데, '위기의 아빠와 서울공대생 아들의 20년'이라 적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서울대 보낸 아빠의 위세를 뽐내는 책인가' 싶어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사이다였다. '아빠도 별 수 없는 부모구나', '아빠도 자식과 부딪치고 상처 받는 구나', '엄마들과 다를 게 없구나', '부모는 결국은 지고 마는 존재구나.'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남편에게서 받은 고구마 100개의 체증을 이 책을 읽으며 시원하게 내려보냈다.



아빠의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춘기 아들, 그게 진실일까?


작가는 아들에게 받은 '한 방'을 첫 페이지부터 고백한다.


"아빠의 좋은 점은 어떤 게 있을까?"

"없어, 하나도."


갓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의 대답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빠가 내 아빠여서 좋다고 말하던 아들은 예전 자신이 했던 그 말을 온몸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상처는 말에도 있었지만, 침묵에도 있었다.


수다스럽던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며 아빠에게 문을 닫았다. 차 보조석은 에어팟이 꽂힌 검은 벽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아빠를 전면 부정하는 사춘기 아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괴로웠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딸이 내 말이라면 숨소리까지도 반항하던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네가 이러면 엄마가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엄마 아팠으면 좋겠어?"

"상관없어."


딸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 한 마디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딸에게 얄팍한 동정심이라도 구하려 했던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작가는 영화 <결혼 이야기>의 한 장면을 빗대어 이야기한다.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젊은 부부가 지독하게 싸우며 서로를 깎아내리다 결국 전부를 부정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깨닫는다. 감정 싸움은 내 생각을 확신하기 위해 벌이는 게 아니라, 내 고집을 밀어붙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걸. 그 맹렬한 말들이 엉켜 지나간 뒤에는 미안함만 남고, 그 미안함을 알아차리는 순간 비로소 화해가 시작된다.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저 내 생각을 밀어붙이기 위해 서로의 전부를 부정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 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미안함 뿐이다. 다행히 그 미안함은 시간이 지나 화해로 이어진다.


'자기정체성'을 향해 몸으로 부딪친 아들의 흔적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아들의 찢어지고 패인 샌드백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이었다.


녀석의 샌드백이 찢기고 패여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제일 먼저 사준 아이템이었다. 2~3년 지나니 깊고 날카로운 흔적이 군데군데 생겼다. 성날 때 패라고 사준 것이긴 했다. 그래도 가끔은 아빠가 찢긴 듯 마음이 무거웠다. (86쪽)


찢긴 샌드백은 사춘기라는 자기 정체성을 향해 몸으로 부딪친 아들의 마음 흔적이었다. 다행히 저자인 아빠는 그 흔적을 발견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섭섭함에 갇혀 딸의 그 흔적을 보지 못했다. 매일 베고 자는 분홍색 베개였을까. 아니면 딸의 키만큼 큰 오리 인형이었을까. 그저 방이 엉망이라며 투덜대고, 버리겠다고 협박만 했지, 그 안에 아이의 분노와 슬픔이 얼마나 쌓여 있었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이 책은 인문서이기에 앞서 사춘기 부모의 마음을 돌보는 '늦깎이 육아서'였다. 사춘기라는 또 다른 성장의 파동 앞에서도 부모는 여전히 배워야 했다. 그걸 몰랐던 나는 몰라서 더 미워했고, 몰라서 더 아팠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작가는 말한다. 아이의 사춘기를 인정하는 건, 어쩌면 부모로서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내 일부였던 아이가 낯선 손님처럼 멀어질 때, 부모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그 불안을 견뎌야 비로소 서로가 성장한다고.


현재, 작가의 아들은 강원도 최전방에서 복무 중이라고 한다. 입대 전, 아빠는 공군이나 해군의 기술 '모집병'을 권했지만, 아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혹한의 최전방을 자원하다시피 했다. 아빠의 마지막 개입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그 장면이 내게는 오히려 감동적이었다. 자기 길을 스스로 정할 줄 아는 아들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서울대 공대생이라는 학벌보다 훨씬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인문교양서로 손색이 없는 이유는, <모비 딕>, <어린 왕자>를 비롯한 열일곱 편의 소설과 영화, 희곡의 장면들이 적절하게 인용되어 관계의 깊이를 확장시키는데 있다. 또한 인문 교양서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건 작가의 유머 덕분이다. '의논은 간섭, 제안은 잔소리', 대답을 구걸하면 "응", "아니", "맘대로 해." 엄마들이 속풀이 모임에서 쏟아내던 생생한 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지난 10월 20일은, 막 사춘기를 건너온 사랑하는 둘째 딸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낳아줘서 고맙다"며 내게 립스틱을 선물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딸에 대한 내 마음이 모처럼 립스틱처럼 화사해졌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


마지막에 쓴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서툴기에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에 서로의 서툰 삶을 보듬어 주는 존재가 된다.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힘이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며 배워야 하는 가장 어려운 마음 공부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 위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서평 에필로그)


지난 10월 21일은 저에게는 정말 인지못할 날이었습니다.

라이테 작가님과 저 포동송이, 붕어만세 작가님은 브런치가 맺어준 비공식 삼남매로

댓글로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주거니 받거니 했었거든요.

익산에 사시는 라이테 작가님께서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행을 택하시며

극적으로 삼남매 상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무당벌레 작가님의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출간일이었더군요.

평소 라이테 작가님과 무당벌레 작가님의 끈끈한 이웃 사랑 덕분에

막 인쇄소에서 태어난 핏덩이 같은 책을 종로 서촌까지 가지고 오셨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모처럼 즐겁고, 훈훈했던 시간이었어요~

저 역시, 그냥 있을 수는 없어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보냈습니다.


무당벌레 작가님, 다시 한번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베스트셀러까지 머지 않았습니다~



사춘기를 인정하는 건, 부모로서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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