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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Heejin Choi Mar 10. 2022

근대 미국 사회의 제3의 장소,  라거 비어 가든

[Book Review] 제3의 장소, 5장 - 레이 올든버그

진정한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는 공동체와 이웃의 존재를 인식하고 찬미하는 분위기이므로 배제에 기초할 수 없고, 따라서 특정한 나이나 성별, 계급, 국적을 차단하지 않는다. 즉, 본질적으로 포용적이라야 하는데, 라거 비어 가든이 바로 그런 장소였다.
- 레이 올든버그(2019), 제3의 장소(김보영 옮김), 161쪽-162쪽, 풀빛.

당신이 자주 가는 카페나 술집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혼자 가도 편안함을 느끼며 친구와 동료, 가족과도 즐길 수 있는 곳인가요? 언제나 방문해도 가게 주인, 또는 다른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나요? 자주 방문하는 가게뿐만 아니라 당신이 다른 지역 또는 나라에서 외지인으로서 어떤 가게에 방문해도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낀 적이 있나요? 


저는 서울 여기저기 이사를 하며 동네에서 좋아하는 카페와 식당을 찾곤 했지만, 얼마 못 가서 제가 이사를 하거나 가게가 없어진 경험을 많이 했어요.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데 제3의 장소로써 누구나 쉽게 오고 가며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가게가 있다면 삶의 또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가 사는 도시에서는 높은 수준의 임대료와 경쟁적인 구조로 가게는 회전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에, 저 또한 한 가게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 거 같아요. 


오늘날 편안하게 방문하고 누구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제3의 장소로써 당신의 장소는 어딘가요? 어떤 공간으로 구성되어야 제3의 장소로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반면에 그러한 장소에서의 경험이 박탈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19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인들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데 주요한 장소로 역할을 했던 '살룬(Saloon)'과 '비어 가든(Beer garden)'의 아늑한 분위기와 사회적 소속감을 보여준 문화(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를 살펴봅시다.



19세기-20세기 초 미국 살룬(Saloon), 독일계 이주민들의 라거 비어 가든


1840년 이후 독일계 이주민의 규모가 크게 증가했는데, 노동자 계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미국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편입되고 통합되어야 했다. 당시 독일계 이주민들은 질서를 향한 열정과 지역공동체에서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사교 활동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살룬과 비어 가든에서 독일계 이민자들은 음주를 적당히 즐기며, 여러 사회 계층의 동료 또는 가족과 함께 사교와 놀이를 하며,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는 과도한 음주와 소비, 도수 높은 술을 즐기는 미국 북부식 술집(양키 살룬)의 문화와는 크게 다른 점이었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밀워키(위스콘신주)로 이주한 독일인은 1846년 고국의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 양키 살룬에서는 충분히 즐길 수 없음에 불평하며 금세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슬렁거릴 수도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그저 슈냅스 한 잔 벌컥벌컥 마시고 바로 나갈 수밖에 없다." (154쪽) (슈냅스 - 독일 보드카, 한 번에 마시다)

미국 저널리스트 주니어스 브라운(Junis Henri Browne)의 저서 "The Great Metropolis - A Mirror of New York(1869)"에서 1870년대 뉴욕의 라거 비어 가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옛 뉴욕의 수많은 라거 비어 가든에서 독일의 축제 전통을 관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관찰처럼 독일계 이주민들은 라거 비어 가든에서 가족과 함께 저렴한 비용으로 맥주를 마시며 즐거움과 안락함을 동시에 누리는 여가를 보낼 수 있었다.

"독일인의 음주는 미국인의 악습과 다르다. 독일인은 라거를 즐기되 과음한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돈이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말다툼을 하지도, 치고받고 싸우지도 않는다. 미국인들과 달리 자신의 희망이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행복을 망치지 않는다. (중략) 맥주는 사회적 가치를 가지며, 감브리누스(맥주를 발명했다고 알려진 전설 속 왕)는 모든 가정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독일인은 살룬이나 비어 가든에 갈 때 아내나 자녀, 연인을 대동함으로써 가정과 유흥을 실질적으로 결합한다. 가족들이 있기에 과음이나 부적절한 행동을 제어하고, 적절한 시간에 자리를 떠나며, 맥주와 안락감을 만끽한다. 그들은 편안한 마음과 완벽한 식사라는, 평화를 위한 두 가지 필수 요소를 누린다." (158쪽)

여기서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라거 비어 살룬을 제3의 장소로써 기능하는 주요한 특징을 포착한다. 바로 "포용성과 수평화"이다. 라거 비어 가든은 흔히 "가난한 사람들의 클럽"이라 불렸으나, 실제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다양한 세대 등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장소였다. 또한 여러 도시에서 제각기 규모와 종류의 라거 비어 가든이 크게 늘어 쉽게 이용 가능했다(기차나 증기선으로 쉽게 뉴욕에 갈 수 있는 동네뿐만 아니라, 게뮈틀리히카이트의 수도였던 밀워키(당시 독일계 이민자들의 최대 거주지),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지). 탁자 하나에 의자 두 개밖에 없는 길모퉁이의 작고 누추한 가게에서부터 크고 우아한 야외 공원과 사격장, 당구장, 볼링장, 회전목마, 콘서트 등 다양한 오락거리가 있는 대규모 업소로 운영되었으며, 이는 훗날 미국 테마파크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출처: Gergely Baics, The Saloon: The Poor Man’s Club, Connecticut Explored, Winter 2003. 


독일계 이민자들은 일요일에 라거 비어 가든에서 열리는 활동과 모임에 참여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1855년 시카고에서는 돌연 일요일에 선술집 폐쇄와 주류세를 인상하는 조례를 발의했고,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일요일에는 종교 활동만 가능했다. 당시 미국에 머물던 독일 신문 편집자 카를 그리징거(Karl Griesinger)는 일요일 사교활동 금지와 미국 교회와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러한 압박은 라거 비어 가든의 생활양식을 뒤로 밀려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성직자는 다른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즉, 경쟁에서 이기고 고객을 늘려야 하며, 수입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것은 자기 책임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교회에서 왜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강조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애를 쓰며, 기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당연한 나라가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168쪽)

레이 올든버그는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라거 비어 가든과 같이 상호 교류와 향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았으나, 그러한 장소는 "케뮈틀리히카이트를 조잡하게 흉내 낸 모사품과 빈껍데기"뿐이라고 지적한다.

비어가든은 미국의 경쟁적인 경제 시스템과 꾸준한 사교 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데 기여했고, 동등한 기초 위에서 모두를 환영함으로써 사회적 격차를 완화했다. 독일계 미국인들은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 즉 자신이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어느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 같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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