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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Heejin Choi Mar 10. 2022

물, 여자, 그리고 시

신영배 시인의 <물속의 피아노> (문학과지성사, 2013)를 읽고 

신영배 작가의 시집을 들었다. 작은 가방에 넣고 버스에서, 기차에서 읽다가 딴생각하다가 다시 읽다가 목적지까지 가면서 들고 다니기 편하다. 시인의 <물안경 달밤>(문학과지성사, 2020)을 읽기 전에, <물속의 피아노>(문학과지성사, 2013)를 먼저 집어 들었다. 연보라색인지, 연핑크색인지 표지 색상이 좀 더 예뻐서... 이제 읽기 시작해서, 앞으로 더 읽어보고 비평을 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해서 써보면 좋으련만... 


그녀의 시에는 여자의 손끝, 발끝, 팔, 다리 등 온몸에 물방울이 맺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녀는 식탁을 차리거나 걷어치우고 또 차리고, 불안과 부끄러움을 놓는다(물방울 알레그로, 9쪽). 그녀는 물방울을 머리 위로 썼다가 벗다가 하며, 서랍에서 화분으로, 불안과 웃음, 울음을 가진다. 여자의 몸은 아마도 익숙한 장소에서 물방울과 함께 한다. 



신영배 <물속의 피아노> 19쪽에서 21쪽

공중의 잠


공이 떠 있었다

한낮

놀이터에 아이들이 멈춰 있었다

베란다 끝, 여자의 발끝이 젖어 있었다


여자가 돌아서자

집 안 가득

공중에 물들이 떠 있다

물의 요일, 여자의 눈은 물컹하다

물방울 하나가 여자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여자는 물방울을 머리에 눌러쓴다

향기로운 물모자

살짝 들어 올리자

머리 위에 사과가 나타난다

여자는 사과와 함께 움직인다

서랍을 열고 단어를 꺼내 화분으로 옮긴다

여자는 또 하나의 물방울을 잡아 쓴다

간지러운 물모자


살짝 들어 올리자

머리 위에 새장이 나타난다

새장과 함께 

여자는 서랍에서 화분으로 단어를 옮긴다

또 하나의 물방울

여자는 빨간 물모자를 쓴다

아프게 고인 것도 살짝

들어 올리자 

찻잔 유 리 병 색 종 이 시 계 단화......

머리 위에

물방울들이 둥둥 떠 있고

여자는 모자를 쓰고 벗고, 쓰고 벗고

서랍에서 화분으로, 서랍에서 화분으로

불안과 웃음으로 분주하게

불안과 울음으로 분주하게


폭죽처럼

화분 속에서 알 수 없는 꽃들이 피어오른다


수평하게


여자가 화분을 안고 공중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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