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따라 그리기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시아 첫 회고전으로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에는 1950년대부터 2017년까지의 회화, 드로잉, 판화에 이르는 130여 점이 초대되었다. 물론, 가장 기대를 모았고 단연 돋보였던 작품은 ‘더 큰 풍덩(A Bigger Splash)’이었다.
당시 전시관 내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아 수많은 관람자들처럼 나 역시 작은 사진으로나 봤던 거대한 그림들을 눈에 담아두려 애써야 했다.
그리고, 유난히 ‘더 큰 풍덩’ 앞에서 쿵하고 마음이 물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디테일한 물 튀는 묘사에 감탄하기를 반복하며 그 한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이후 국내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전시가 더 매력적이고 혼란도 덜한 것 같다. 촬영불가에 한표.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1937년생이니 86세인 지금까지도 다채로운 도전을 즐기는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당시 서울에서 열린 호크니의 전시를 보고 소셜미디어에 후기를 남기는 것인 본인이 ‘인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을 만큼, 호크니 작품의 서울 착륙은 큰 바람이었다.
그는 생존 작가 가운데 최고 작품가를 기록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2018년 ‘더 큰 풍덩’처럼 수영장 시리즈 중 하나인 ‘예술가의 초상‘이 9,031만 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1,090억 원에 낙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6개월 뒤 제프 쿤스의 ‘토끼’가 기록을 경신하긴 했지만.
언젠가 호크니의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수영장 그림들에 관심이 갔다. 그중에서도 실제 작품을 보고 감탄했던 작품 바로 ‘더 큰 풍덩’.
누군가 물로 풍덩 들어간 직후 2초의 짧은 순간을 포착해 2주 동안 묘사했다는 ‘더 큰 풍덩’은 내 오랜 미술 클래스에서 언제나 누군가는 그리고 있는 인기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스케치를 하던 시점, 누군가는 물 튀기는 표현을 하고 있었으니까.
‘더 큰 풍덩’은 영국 출신의 호크니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집집마다 수영장이 있는 풍경에 매료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호크니는 노년이 되어 고향 요크셔로 돌아가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다양한 수영장 그림을 그렸다.
특히, ‘더 큰 풍덩’은 정사각 형태로 외곽이 베이지색으로 처리되어 있어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이 작품 제작 당시 신문물이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80대의 호크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과 매체 활용에 적극적이어서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활용한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영역을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더 큰 풍덩’ 모작을 시작하면서 폴라로이드 사진 느낌의 외곽은 없애고 수영장 풍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실제 작품은 2m가 넘는데 반해 내가 그림은 50cm 정방 사이즈여서 외곽까지 표현하면 수영장은 더 작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작품은 내가 앞서 그렸던 색 변화가 많은 정물이나 인물에 비해 정확한 색을 찾아내기만 하면 색변화가 크게 없어 진행하기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찾지 못하면 그것은 망.
초벌에 이어 고르고 고른 두 번째 색을 올리자 색이 명확해지면서 정말이지 캘리포니아의 쨍한 태양 아래 어딘가 수영장을 눈앞에 둔 것만 같았다. 야자수도 귀엽게 자리한 잔디도.
원작은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을 사용했지만, 난 유화물감으로. 개인적으로 아크릴의 화려한 쨍함보다는 유화의 어떤 깊이감이 좋아서인데, 다행히 원작의 선명함을 표현해 낸 것 같다.
단, 호크니도 2주나 묘사했다는 그 물에 빠지는 순간은 꽤 진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새 파란 수영장 물 위에 하얀색 물 튀김은 점이나 선 무엇으로든 한 번에 잘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큰 존재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2주에 걸쳐 총 4시간 동안 그려서 물 표현을 마무리했다. 전업작가인 호크니의 2주와 직딩 취미미술 수강생 나의 2주는 전혀 다른 것이겠지만. 다이빙 바에 물이 튀어 남겨진 것처럼 쓰인 싸인과 제작연도까지. 내 맘엔 든다. 이건 분명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