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의 나에게 다가왔던 큰 깨달음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그래서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용납의 대상이다.
나에게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마음을 담아 용납을 하다 보면 이해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매 순간 집중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것이긴 한데,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넓이와 깊이만큼 사람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사실 치열한 일이다.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의 '태도'일 것 같다.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물리학에서 내가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는 운동량(momentum)이다. Momentum은 Mass와 Velocity의 곱으로 이루어진다. P=mv. 질량은 내가 무언가에 얼마나 빠져있는가라는 무게감으로, 속도는 새로운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는가라는 민첩함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태도를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현재 상태나 환경,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성장하려 하는지, 주어진 상황에 어떤 결정을 할지가 궁금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나의 마음을 다하지 않고, 마음이 부서지는 일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취약(vulnerable)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달라질 수 있는 민첩성(agility)이 생겨나는 상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상처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감정의 경계(boundary)이고 "Cutting Edge"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이 부서지더라도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는 그렇게 하겠다. 마음은 되갚는 것이 아니다.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취향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람을 바라볼 때는 나의 따뜻하고 깊은 시각이 담겨 있기를 원했고, 내가 선택한 물건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기를 바랐다. 나만의 셀렉션을 만드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무언가의 가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준거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참고하고 얼마만큼의 차이를 발생시키는지 알 수 있어야 하며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