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들어도 되고, 빨주노초파남보 옷 입어도 됩니다.
누구나 투표 인증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인생의 낭비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고, 당당하게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투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도 많이 있고,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인증을 남겨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인증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뭘 할 수 있고, 뭘 하면 안 되는 것일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는 그 무엇보다도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공직선거법은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선거운동이든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투표 인증이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공직선거법상 제한되는 선거운동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자주 언급되는 몇 가지 인증 방법들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한 번 살펴보자.
투표소 밖에서 '○○동 (사전)투표소'라는 표지를 배경으로 해서 인증샷을 찍어도 된다. 사실 이걸 문제 삼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투표소 안에서는 촬영을 하면 안 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직선거법 제166조에서 제한하고 있는 '소란한 언동'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 공직선거법 제166조의2 위반이다. 아직도 사전투표일이나 투표일에 SNS를 써칭하다 보면 투표지를 촬영해서 올리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선관위에서 열심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신고도 받고 있기 때문에 금방 문제가 될 수 있다. 투표용지에 기표를 마친 것을 투표지라고 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기표를 하지 않은 빈 투표용지를 촬영하는 것은 가능한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소란한 언동'으로 봐서 문제를 삼을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촬영 자체를 하지 말자.
투표소 밖에서 손가락으로 '엄지 척'이나 '브이'를 하며 인증샷을 찍어도 되고, 찍은 인증샷을 SNS에 올려도 된다. 손가락을 들고 군중을 향해 소리라도 지른다면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특정 후보의 기호를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손가락 모양을 하고 인증샷을 찍는 정도는 애초에 선거운동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에 가깝다. 게다가 개인은 시기에 관계없이 인터넷을 통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운동으로 해석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증샷을 올리면서 누구를 찍어 달라는 멘트를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
특정 후보의 정당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색상의 옷을 깔맞춤으로 입고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지 척이나 브이처럼 이 정도 행위만으로 선거운동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인데, 대놓고 후보자의 이름이나 기호, 정당의 명칭 등을 박아서 굿즈 수준으로 만든 옷을 입고 가거나 아이템(?)을 들고 가면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63조 위반이 될 수도 있다. 투표소 입장조차 못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지만 공무원이나 미성년자 등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SNS를 통한 선거운동도 할 수 없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인증 방법은 투표소에서 공식적으로 발급해주는 투표확인증을 받는 것이다.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고 난 후 투표관리관을 찾아 투표확인증을 발급해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위와 같은 확인증을 발급해 준다. 아직까지 투표확인증 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서인지 양식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필자가 받은 확인증처럼 날인이 일부 누락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런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코시국에 비닐장갑을 벗고 손등에 도장을 찍는 것보다는 더 위생적이고 확실한 인증 수단이다.
만약 회사에 확인증을 제출해야 한다거나 하는 사정이 있다면 투표관리관에게 말해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해달라고 요청해보자. 정신없는 현장에서 누락된 날인을 즉시 보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구시군 선관위에서도 확인증을 제대로 발급해줄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를 잘 해두면 좋을 것 같다.
민주시민으로서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해놓고도 인증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