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된 점방. 베트남 시내 곳곳에는 이 같은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삼식이가 되었다. 출근한 뒤 잠시 일하다 보면 11시 30분, 점심때가 된다. 베트남의 점심시간은 11시 반에서 1시 반까지 2시간이다. 11시 10분을 넘어가면 동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뜬다. 다들 집으로 간다. 든든한 오토바이 한대씩 있으니, 다낭 시내에선 어디든 10분이면 도착한다. 나는 걸어서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집이 있으니 오토바이가 필요없다. 오가며 거리를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식후 동네 산책과 15분 정도 낮잠은 베트남이 준 소확행이다. 오후 5시 반에 퇴근하니 아침,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집 밥 먹는 삼식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아내의 식사 준비를 도울 때가 많으니 크게 나쁜 뜻의 삼식이는 아니다.
속도가 다르면 시야도 달라진다. 시속 50km와 130km로 달리는 차량에서 보이는 시야는 다르다. 과속하는 사람은 앞만 봐야 하지만, 느리게 운전하면 앞과 좌우는 물론 세밀한 도로 상황까지 챙길 수 있다. 걸어 다니는 필자에게 주변은 여유 있고 넉넉하다. 골목이 보이고, 그 곳에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생활 방식도 볼 수 있다. 한 집 건너 가게가 있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다낭이 관광지라서 다른 도시에 비해 서비스업이 더 발달한 이유도 있겠지만 작은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사진 2] 베트남의 쌀가게.
무엇보다 이방인을 흥분시킨 것은 한국에서는 사라진 점방<사진1>을 발견(?)한 것이다. 점방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담배 한 갑, 성냥 한 갑, 소주 한 병에 심부름 값으로 과자 한 봉지 챙긴 기억이 있는 곳이다. 사전에는 점방을 ‘자그마한 규모로 물건을 파는 집’으로 설명해 놓았지만, 동네 꼬마 녀석들에게 점방은 신기한 만물 가게였다. 그러한 점방이 다낭에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다낭에, 그것도 국제적 관광휴양도시인 다낭에 점방이 살아있다면 다른 도시, 다른 지역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점방은 가교이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물론, 마을에서 구할 수 없는 외지 물건도 들여다 판다. 한국산 초코파이, 쿠크다스가 보이고, 일본산이라 써 붙인 상품도 있다. 더운 날씨에 맞추어 패트 물병과 큰 물병도 있고, 구색을 갖춘 과자 더미도 보인다. 위문고리에는 수건을 쭉 매달아 작은 공간도 빈틈없이 활용하였다.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간편식(HMR)도 보인다. 가게 안에는 큼지막한 하루 날짜 달력이 있고, 베트남 커피는 벽에 매달아 전시한 듯하다. 점방에는 이렇게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나, 길 가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상품들로 가득하다.
[사진 3] 베트남의 작은 식당. [사진=석태문 박사]
점방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점방이 마을의 정보소통 창구가 되는 이유이다. 다낭이 아니라 좀 더 시골에 가면 한국의 옛 점방 같은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점방은 슈퍼마켓은 아니나 필요한 구색은 다 갖추었다. 동네 여기저기에 작은 가게가 있으니, 점방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동네 가게로 가면 된다. 그러니 점방과 작은 가게에 가면 필요한 생필품은 웬만하면 다 구할 수 있다. 주민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주민들이 물건을 산다. 옷 가게 주인은 주민이 운영하는 쌀국수 식당에서 아침 요기를 한다. 식당 주인은 이웃 이발소에서 머리손질을 한다. 이발소 주인이 동네 쌀가게에서 산 5kg 봉지쌀은 가족의 밥상을 1주일 간 넉넉하게 책임질 것이다. 점방과 작은 가게가 자연스럽게 마을의 순환경제를 이룬다.
[사진 4] 수입보세의류점. [사진=석태문 박사]
쌀가게<사진2> 모습이 정겹다. 가게 입구에는 대형 알루미늄 통에 쌀이 산물로 담겨 있다. 뒤에는 2kg, 5kg 포장 쌀이 있고, 맨 뒤에는 20kg 정도는 됨직한 쌀 포대가 쌓여 있다. 산물 쌀은 포장 쌀의 절반 가격이다. 시험 삼아 구입한 1kg 산물 쌀이 우리 돈 650원이니, 정말 싸다. 작은 식당<사진3>도 보인다. 우리말로 ‘봄카페(Xuan Caf)’란 이름의 식당은 밥 종류와 커피, 과일음료를 함께 판다. 유리 상자 안에 차려진 음식을 주문하면 1회용 그릇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거나, 식당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 수입보세의류점<사진4>도 보인다. 아내가 관심이 있어 들어가 보았으나 사이즈에 맞는 옷이 없었다.
[사진 5] 베트남의 이발소, 이 곳에서는 미용을 물론 마사지, 네일관리도 가능하다.
동네 아저씨가 운영하는 이발소<사진5>도 보인다. 이발 상품(?) 을 홍보하는 문구에 마사지 글자가 적혀 있다. 다낭에는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도 많다. 이발소나 미장원 간판이 붙은 곳에 마사지 글자는 필수이다. 네일숍에도 발 마사지는 기본이다. 놀라운 것은 식당과 마사지를 결합한 상품이었다. 아내와 ‘붉은 부엉이(Redowl)’란 이름의 식당<사진6>에 갔다. 나중에 보니, 마사지를 하면 식사는 공짜로 주는 식당이었다. 개별상품 2개 보다 싼 결합상품으로 고객을 유혹하는 마케팅이야 흔하지만, 마사지와 식사를 결합한 상품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다낭에서 또 어떤 깜짝 상품이 나올 지 기대된다.
[사진 6] 이곳은 식당이지만 마사지를 받으면 식사를 무료제공해준다.
당신은 다낭에 오니, 어떤 생각이 드오? 이른 저녁을 먹고 마을을 산책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길거리에 사람들이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아주머니, 할머니도 작은 리어카와 식기들을 챙겨 노점을 차린 모습<사진7>을 보며 말했다. 이런 게 보기 좋지 않나요? 누구도 자기 몫을 하며 사는 이런 곳이 아내는 좋단다. 자신의 재능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일할 의사는 있으나 부득이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경우엔 이웃이 부조하며 같이 살도록 보듬어 주는 곳을 우리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다낭의 마을공동체가 참 튼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7] 베트남의 노점.
다낭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옛 건물이 헐리고, 새 건물이 올라간다. 한국의 ‘본죽’<사진8>도 들어왔다. 작은 가게를 해체시킬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인 ‘빈마트’<사진9> 숫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빈마트는 조만간 점방을 대체할 것이고, 마을의 작은 가게들은 다음 희생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마을은 주민이 경영하는 마을에서 타인이 경영하는 마을로 바뀔 것이다. 작지만 자기 경영체를 가졌던 주민은 타인이 경영하는 가게에 고용될 것이다. 마을의 자립적 순환경제가 외부경제 의존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경제는 빠르게 발전하겠지만 변동이 심한 외부경제가 마을 깊숙이 자리 잡으면 사람들의 삶은 조금 나아지겠지만 그 이상으로 고단해 질지 모른다.
[사진 8] 한국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눈에 띄인다.
다낭에는 공동체의 풀뿌리 같은 점방과 작은 가게가 아직 많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베트남의 경제가 전통경제를 빠르게 해체시킬 수 있다. 점방과 작은 가게가 사라지지 않도록 관련 정책을 서둘렀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경제발전의 과실을 마을과 주민들이 누릴 수 있다. 박물관의 화석도 살리는 세상이 아닌가? 살아있는 점방과 작은 가게를 계속 살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지 않는다. 작은 가게와 점방이 계속해서 건강한 베트남 공동체에서 살아남아, 진화하기를 소망해 본다.
[사진 9] 베트남에도 프랜차이즈 마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출처 : 뉴스퀘스트(http://www.newsquest.co.kr) 2019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