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사유를 읽고.
얼마 전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업무는 효율적으로 굴러갈지언정, 정작 내 몸을 돌보지 못한 까닭에 온몸이 뻣뻣하게 아팠다. 더는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요가수련을 시작했고, 요가수련의 끝에는 항상 10분 정도 모든 동작을 끝마친 채, 가만히 누워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책의 한 구절을 듣는다.
그러면서 하루를 돌아보고 수고한 나 자신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사유의 시간이 주어진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하루의 끝에 꼭 필요했을 법한 구절을 읽어주시는 선생님의 차분한 음성에 마음이 일렁일 때가 있다. 그러할 즈음에 만난 책이 “존재와 사유”이다.
저자 이보균 님의 약력이 인상깊다.
인문에세이스트. 길에서, 숲에서, 기다리다가. 여행 중에, 책을 보다가 스치는 생각을 모아서 글을 쓴다. 사유를 통해 공감의 길을 열어가며 사람은 스스로 탁월함을 추구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유하는 일상의 풍경을 글로 쓰는 ‘사유 작가’다. 그림 그리듯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정한 수입을 위해 적당한 노동을 하고, 내 삶을 꾸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가장 궁극적인 목적인 내 가족을 등한시하게 되거나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소홀히 할 때가 있다. 더군다나 수많은 환경과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이기에 쉽사리 여유를 떠올리고 시간을 내어 사색할 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유독 행복과 결부시켜 삶을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보이는 게 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를 스스로 다독이고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 사람은 마음이 깊고 넓다. 그리고 그러한 품위는 스스로도 닮고 싶게끔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무언가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그러한 사람들을 찬찬히 보면 각자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보일 것을 생각하며 꾸며내고 멋을 낸 이야기가 아닌, 자신을 위한 내 안의 모든 감정을 하나하나 추스르며 온전히 나의 하루를 마감하는 일기를 꾸준히 쓴다. 시간을 내어 여행하고,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다.
가까운 공원이나 야트막한 산, 동네산책을 하며 각자만의 사색을 즐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할애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되돌아보며 그것에 맞는 다음 상황을 연결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배려, 시선, 연결, 인식, 시간” 이라는 다섯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삶은 존재의 여행”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유하는 일상의 중요함을 여러 일화를 통해 다양하게 강조하며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나무와 풀, 가구와 산, 계절에서 일상의 쉼을 결부시켜 대상과 다른 대상으로 이어짐을 나열하며 채 알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름다움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봄의 중간 즈음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산과 들의 풍경을 작가의 생각과 함께 그려낸다.
“계절의 흐름에서 자기 역할에 소홀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햇살 좋은 날 봄의 뒷모습을 따라 근처에 있는 숲을 찾았다. P172
산뜻한 바람이 가볍게 감긴다. 빛 바랜 꽃 몇 송이를 봄의 흔적처럼 갖고 있지만 이젠 꽃이나 잎보다는 뿌리를 키우겠다는 표정이 차분하다. 그래, 뿌리가 중요하지.
오월의 꽃은 땀 흘려 일하는 잎들에 부담스럽지 않게 하얀 색 계열이 더 많다. 겸손하지만 원숙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자연의 선택이다. P173
“ ’나무들에서 많이 배우지요. 숲을 보면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 삶인지 알 수 있어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떳떳이 서면서도 다른 나무들을 받아들이고 어울린다. 경쟁과 절제의 균형이다. 그리고 더 많은 생명들을 부르고 담는다. 아름다움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큰 기운을 만들고 나누는 것은 아닐까? 길을 가다 잠시 머문 시간가 공간에서 다양성의 미를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P175
나무와 꽃의 자연스런 어울림을 작가는 다양성의 미라고 표현한다. 각각 내뿜고 있는 생명의 중요성이 다양성과 결합되어 아름다움으로 비춘다는 말이 뭔가 평온함을 뜻하는 것 같아 이 페이지는 계속해서 되뇌어 읽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서 ‘다양성의 미’를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는 아무래도 회사의 단편적인 일상의 모습들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유독 팀웍이 좋은 팀이 있다. 아무래도 업무분야가 디자인이다 보니 일반 회사보다도 정말로 다양한 성향과 스타일의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갈등이 없을 수 없고, 또 그런 과정을 풀어가며 업무를 진행하는 게 대다수다. 회사의 사훈이기도 한 다양성과 창조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실 사훈일 뿐, 생각보다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유독 매출이 잘 나오고 힘들고 어려운 업무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팀은 분명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팀원을 잘 아우르는 팀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인정받고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는 팀원이 있다. 그런 그들을 보면 저 팀이 잘 될 수 밖에 없구나 하고 수긍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이 다양성의 미가 잘 결합하여 좋은 방식으로 흘러가는 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것들이 바쁘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여유라는 것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정작 현실적으로 부족한 것 없는 일상을 꾸리더라도 마음이 공허하다. 이는 내적으로 꽉꽉 채워지지 않는 부재에서 오는 일종의 공허함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유와 공감, 소통이 연결되어 ‘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일컫는다.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나’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익숙지 않지만, 그러한 순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정인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죽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을 떠올리고, 나를 다독여야 한다.
요가를 시작하게 되면서 평소 익숙하게 생각했던 몸의 통증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만 할 수 없는 작업이라 한 방향 자세로 재단을 계속해서 하다 보면 허리와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패턴을 뜰 때에는 트레싱지에 가느다란 선을 여러 갈래로 그려야 해서 고개를 계속 숙인 채 말 그대로 거북목 자세로 눈의 피로와 목의 통증을 동반한다.
발표자료나 회의자료를 준비할 땐 앉은 자세로 모니터를 보아야 하니 무릎도 여간 아픈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온몸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아픈 곳이 좋아지기 위해선 약간의 통증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쓰지 않던 여러 근육이 뻐근하고 아프다.
그동안은 아프면 그냥 또 아픈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일을 해왔는데, 요가를 하면서 모든 곳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더는 아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시했던 몸의 아픔들이 절대로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되었다. 적어도 다른 이들보다는 유독 ‘나’와 소통을 잘 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은연중에 어느 순간 나 역시도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삶도 그렇고, 소통도 결국, 모든 것들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로 하여금 타인과 함께 성장하며 다양성의 미를 충족시킬 수 있고, 삶을 존재하게 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나 자신과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리고 너무도 일상적이고 평이한 말이지만 강력한 힘을 주는 문장.
“나는 온전하고 유일한 존재” 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