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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짠짠이아빠 Mar 12. 2020

아기의 패턴에 눈뜨다

짠짠이 50일이 지나고 장인 장모께서 내려가시고 나니 이제 오롯이 우리 둘이서 육아를 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육아란 것은 온종일 누워 있는 아기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달래고, 놀아주고, 재우고,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시간이다. 다만, 언제 뭘 할지 예상이 안 되고 할 일들의 주기가 짧으니 정신없고 진이 빠지는 느낌. 트림해놓고는 토해서 옷 갈아입히고, 방금 기저귀 갈았는데 응가해서 씻기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울어서 달래고, 이런 식으로 할 일이 쉬지 않고 던져진다. 그나마 짠짠이는 100% 모유 수유를 해서 먹이는 일은 많지 않아 다행인 정도. 분유 수유를 하면 낮밤으로 젖병 씻는 일이 주로 남편 담당이라던데(...). 완모의 여왕, 최대주주님의 공덕이 참으로 크옵니다.


한참을 지지고 볶다 보면 같이 떡실신


100일 이전의 아기는 계속 누워만 있고 아직 뒤집기도 못 할 시기라 해줘야 할 게 얼마나 있겠나 했던 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시간은 보내야 하니 놀아주지 않으면 지루해하고 짜증내고 운다. 움직이지 못하니 큰 사고가 날 일이야 없지만 그렇다고 눈을 뗄 수도 없다. 게다가 나와 아내는 둘 다 육아 쪼렙이라 짠짠이가 울면 멘붕이 와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나마 나는 무신경한 편이라 버티는데 아내는 우는 소리를 굉장히 괴로워했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아들은 심심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가만히 누워 계신 아들님에게 쉬지 않고 온갖 콘텐츠를 진상해 올려야 한다.


첫 번째 콘텐츠는 위치 변경하기.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반응도 좋고 시간도 잘 간다. 소파에 눕히기, 쿠션에 눕히기, 서서 안아주기, 앉아서 안아주기, 안고 돌아다니면서 집안 탐험하기, 창밖 보여주기 정도가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움직이다 보니 내가 좀 덜 지루하다는 것이고 단점은 체력 소모(...).


두 번째 콘텐츠는 뭔가 보여주기. 초점책, 모빌, 간단한 그림책 정도인데 효과는 확실하지만 많은 시간을 채워주진 못한다. 위치 변경 중간이나 잠시 아들을 놓고 식사, 화장실 등의 용무를 볼 때 활용했다. 우리 아들은 소리 나는 헝겊 초점책을 좋아해서 유용하게 썼다.


세 번째는 창작 콘텐츠. 스스로 소리를 내거나 상황극을 하는 건데, 아들이 "이게 뭐지" 하고 잘 보고 있거나 웃으면 성공이다. 까꿍놀이가 기본이 되겠고 이상한 표정 짓기, 희한한 소리 내기 등 쉽게 말해 쌩쑈를 한다. 내가 주로 활용한 건 아들을 내 다리에 기대서 앉혀 놓고 양 팔을 잡아서 레이싱 상황극을 하는 건데 나와 아들은 만족했고 보는 사람들은 다들 이상하다고 했다(...). 말을 많이 해주는 게 좋다는데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들과는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내가 말이 잘 안 나왔다. 아내는 신기하게도 아들에게 다양하게 말도 하고 여러 종류의 창작 콘텐츠를 제공했다.

아기와 놀아주는 데 있어 콘텐츠 돌려막기와 반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나마 종류를 최대한 늘리는 게 최선일뿐. 아이템이 몇 없던 초기에는 한 바퀴 돌았는데 한 15분 지나있는 걸 보고 현자 타임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아이템이 쌓이니 한 바퀴의 시간도 꽤 채울 수 있었고, 우리 아들은 했던 걸 곧장 까먹는지(...) 반복하는 콘텐츠에도 잘 반응해주었다.


반자동육아시스템 구축을 위한 부단한 연구개발. 아들 전용 IMAX 4DX 상영관.


밥 달라고 울면 먹이고, 놀아주다가 잠들면 쉬고, 때때로 기저귀 갈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짠짠이를 키운 지 2개월이 지난 시점이 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만들어서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자도록 해야 아기에게 좋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덜 힘들 거 같았다. 그래서 아내가 하루 일과에 대한 패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선 잘 때는 어둡게, 깨어있을 때는 밝게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원래부터 밤낮을 구분하기 위해 저녁에도 불을 켜지 않고 거의 자연광으로만 생활해왔는데 이젠 암막커튼을 이용해서 낮잠을 잘 때도 어두운 방에서 재우고 깨면 곧 밝은 거실로 나오게 했다. 하지만 거실에서 잠든 아기를 방으로 옮기다가 깰까 봐 초기에는 실행이 어려웠다.

3개월 즈음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패턴 만드는 법을 알 것 같다."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먹고, 놀고, 자는 패턴을 만드는 이른바 '먹놀잠 패턴'. 이 즈음에 수유 텀이 3시간 정도로 잡히기 시작해서 3시간 간격 패턴을 만들기를 시도했다. 수유해서 먹고 나면 1시간 남짓 놀고 졸려할 때 재우는 것. 아내가 짠짠이를 재우는 법을 터득한 덕분에 패턴이 자리를 잡아갔다. 수십 일간 축적된 관찰과 시간 기록 데이터를 토대로 대강 어느 정도 놀고 얼굴 상태가 어떠면 애가 졸린 거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 어두운 침실로 가서 백색소음을 틀고 안고 토닥토닥해주니 잠이 들었다. 만세! 여태까진 애가 언제 자나 하고 기다리기만 했는데 잘 시간이 예측 가능해지고 재우기 스킬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해지니 시간 관리가 훨씬 수월해졌다.


닥치는 대로 살고 있는 2개월 시간표.
3시간 간격 패턴을 만들어가는 3개월 시간표.
패턴이 상당히 잡힌 4개월 시간표.


패턴을 잡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보람 있었다. 노력할수록 조금씩 성취가 있고 그게 우리 모두에게 이로우니 고단했던 초기 육아에서 벗어나 진보한 단계로 진입하는 느낌이 들었다. 짠짠이 100일에 그 정점을 찍었는데, 놀랍게도 그날 밤 첫 통잠을 잤다. 밤에 잠자리에 들고 아들이 울어서 깼는데 해가 떠있고 몸도 개운한 기분이라니. 2~3시간마다 깨던 시기를 지나 5시간만 자도 감사해하는 와중이었는지라 그 아침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이게 100일의 기적인가 우리도 이제 육아 천국이 시작되는 건가 하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렇게 달콤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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