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짠짠이아빠 Jun 25. 2023

셋이서 떠난 첫 여행

창원 가족들과 함께한 2.5단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3단계 여행을 계획했다. 원래대로라면 제주도가 목적지였는데 아내가 부산 해운대와 기장 바다, 정확히는 두 바다 앞 고오급 호텔이 가고 싶다고 하셔서 부산으로 결정. 비행기를 타는 게 아니니 3단계는 아니고 지난 2.5단계 여행보다는 먼 곳을 가는 대략 2.7단계 여행이랄까. 안양 - 부산 약 5시간 거리를 낮에 이동하는 건 처음이라 나름의 도전이었는데 다행히도 아들이 낮잠을 2시간이나 자주었고 휴게소도 한 번만 들러서 별 탈 없이 부산 도착!


붓싼에 왔으니 밀면부터 한 그릇 해야지예


오후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으로 밀면을 먹고 호텔에 체크인. 바로 이번 여행의 목적인 온수풀에 들어갔다. 지난 강원도 여행에서 워터파크를 신나게 즐겼던 걸 생각한 야심 찬 계획. 따뜻한 물속에 아들이랑 둥둥 떠서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니, "아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그래야 가끔 이런 호사를 누리지"라는 생각이.(...) 여하튼 아들도 나도 아내도 다들 만족한 시간. 그래서 다음날 오전에 또 갔다.(...) 저녁에는 부산에 사는 친구를 호텔로 초대해서 배달음식 시켜서 놀고먹고 아들 재우고 맥주 한 잔 하고. 부산 여행 1일차가 순조롭고 만족스럽게 지나갔다.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고오급 호텔에 가보았읍니다


여행 2일차, 호텔에서 아들 먹이고 기저귀 갈고 낮잠 재우고 등등, 육아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군가는 호텔 가서도 어차피 애 보는 건데 뭐 하러 거기까지 가냐고도 하던데 이렇게 답하고 싶다.


어차피 애 보는 거 좋은 데서 보면 좋더라


집에 없는 푹신한 침대에 눕고, 집에서는 거의 보지 않는 티브이도 틀어서 다 같이 보고, 먹이고 기저귀 가는 도중에도 바다 한 번 슬쩍 보고, 집 앞 공원 대신 해운대 바다 산책하고. 아들이 생기기 전이라면 훨씬 더 이것저것 하면서 일종의 뽕을 뽑았겠지만 이제는 이 정도에도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다. 부산까지 온 게 어디야. 기장에 있는 호텔로 옮겨서 더 넓은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가보고 싶던 식당에 가서 맛난 음식도 먹고 기장 바다도 돌아보고 힐링했다.


같이 식당에서 외식도 하니 여행 온 기분이 난다


여행 3일차, 사건은 갑자기 발생했다. 호텔 체크아웃하고 근처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하다가 해운대 바다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해운대로 갔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평소처럼 카시트 쪽의 차 문을 열었는데 아들이 갑자기 앞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어디로 떨어졌지? 엉덩이로 떨어졌나? 머리로 떨어졌나? 세단도 아니고 SUV라 꽤 높은데. 아니 왜 차 문에 기대고 있었던 거지? 아들이 일어났는지 보고 문을 열었어야 했는데. 왜 울다가 말지? 애가 영 멍한 거 같은데. 무슨 일 생긴 건 아닌가? 혹시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거면 어떡하지. 아 괜히 해운대를 오자고 했나. 


머리가 멍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마침 아들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아내가 아들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호텔 로비에서 엉엉 울었다. 일종의 패닉이 왔다. 시간이 좀 지나니 아들은 괜찮아 보였고 의사 친구에게 상태를 설명하니 병원에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아들을 아기띠에 메고 해운대 바다를 걷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아내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평소에는 기계 같던 사람이 갑자기 저러니.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이 우리 아들에게 별 영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로 아주 여러 번, 이 사건을 떠올리며 괴로운 마음이 들게 된다. 그건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 

마지막을 빼고는 즐거웠던 부산 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이 여행 이후 3단계 여행 계획은 무기한 보류된다. 2020년 2월,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의 기쁨과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