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짠짠이아빠 Jul 15. 2023

아들과 동네 공원 도장 깨기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우리는 아들과의 외출에 자신감이 생겼고 외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집 안에만 있으면 아무래도 시간이 잘 가지 않고 아들도 지루해하는 거 같고. 셋이서 공원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식당도 가고, 베이비카페도 가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랑 둘이서 외출도 되지 않을까?


아내는 아들 낳고 나서 몇 개월 동안 아들과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아들이 좋다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데 막상 놓자니 불안하고. 그래서 내가 둘이서 가까운 공원에 다녀와보기로 했다. 아들이 아침밥을 먹고 대변을 본 초봄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들을 아기띠에 둘러메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으로 나갔다.

기분이 좋고 상쾌했다. 원래 산책과 등산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아들 나오고 나서는 별로 하질 못했는데. 여기에 아들이랑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즐거움, 아내에게 휴식을 준다는 보람이 더해져 흥이 났다. 이 날부터 아내에게 선언했다. 앞으로 주말 아침식사 후 오전 낮잠 전까지는 둘이 산책 다녀오겠다고. 


둘이서만 첫 산책!


아내는 처음엔 좀 못 미더워하다가, 실제로 매주 주말마다 데리고 나가서 1~2시간 후에 들어오니 안심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로부터 아들과 함께하는 동네 공원 도장 깨기가 시작되었다. 걸어서 가는 곳들은 한계가 있어서 차에 아들을 태우고 약 20분 이내 거리에 있는 모든 공원을 하나씩 가기 시작했다. 드라이브를 하니 덜 지루하고 시간도 좀 더 때우고 갈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는 게 좋더라. 네이버 지도를 켜고 인덕원을 중심으로 20분 내로 갈 수 있는 모든 녹색지역에 다 가기로 했다. 


공원 도장 깨기를 시작하고 나서 전부 다 가보기까지 약 2개월, 정말 즐거웠다. 아들과 산책할 생각에 주말이 항상 기다려졌다. 주말 아침이면 후다닥 아들 아침을 먹이고 언제 응가를 하고 데리고 나가나 기다렸다. 다행히 안양/의왕에는 공원들이 많아서 2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들이 10군데도 넘었다. 한 바퀴를 다 돌면 2개월이 지나니 지루할 틈도 없고. 아들도 아기띠에 실려서 여기저기 공원 구경을 하는 게 즐거운 기색. 


산, 들, 호수, 절, 여기저기 가서 인증샷!


한 주를 열심히 일하고 주말을 맞아 아침에 아들이랑 산책을 하고 아들과 함께 오전 낮잠을 자고 일어나 아내가 해준 점심을 먹는 반나절이 행복했다. 가끔 산책 중에 행인들이 우리 아들 귀엽다고 하거나 아빠랑 둘이 있는 게 보기 좋다고 하면 보람 두 배. 그리고 회사 일이 버겁거나 머리가 복잡한 일이 있을 때 아들이랑 산책을 하면 좀 잊고 머리를 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6시에 깬 아들을 데리고 사람이 거의 없는 호숫가를 한 바퀴 걷고 들어와서 출근을 했던 적도 있다.


이렇게 산책을 열심히 다닌 것은, 실은 집에서 아들이랑 놀아주는 법을 잘 몰라서 그렇다. 집에서 책 보여주고 몸놀이 하고 이런저런 장난을 해도 시간이 잘 안 갔고, 무엇보다 내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계속 나갔다. 종종 기쁘지만 전반적으로는 지난한 육아생활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한 내 나름의 돌파구인 셈. 

아들이 크고 좀 더 긴 외출이 가능해짐에 따라 산책 범위도 넓어졌다. 안양/의왕을 벗어나 군포, 서울 강남까지 점차 확장. 게임에서 렙업하고 지도 밝히는 듯한 재미가 이어지는 나날들이었다. 이 산책은 이 글을 쓰는 지금, 4살의 아들과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아들아 이번에는 또 어딜 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셋이서 떠난 첫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