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짠짠이아빠 Aug 05. 2023

02. 결혼하기로 한 남자친구가 갑자기 중국에 가겠단다

2013년 10월, 나는 당시 애인이었던 아내에게 청혼했다. 연애 7년 차, 곧 30대가 되는 나이, 둘 다 대기업에 입사한 지 1년 넘어 각자의 회사생활도 나름 안정된 시기, 딱 결혼할 때였다. 아내의 승낙과 함께 우리는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바로 결혼 준비에 돌입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은 하되 천천히 하자. 아직 젊으니 각자의 생활을 좀 더 즐기고 양가 식구들과 부대끼는 시기를 조금 늦추기로. 그렇게 오래된 연인과 예비부부 사이 어딘가의 위치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와중에 나에게 미래에 대한 큰 화두가 떨어졌다. 아버지 회사? 중국? 먼저 회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만족스러운가? 그렇다. 일, 근무환경, 연봉 다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비전이 있는가? 여기서 조금 망설여졌다. 제조업 R&D 프로젝트 매니저. 특이한 직군이고 더 배울 것도 많지만 이걸로 정년까지 해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서브 조직에서 일하다가 언젠가는 영업, 생산, 연구개발, 재무 같은 일을 다시 배워서 시너지를 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10년쯤 더 일하고 배우다가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텐데. 


나중에 나이 들어 도전하기 겁난다. 젊은 지금 도전을 하자.


이제 와서 보니 좀 아이러니한 생각이었다. 미래의 도전이 겁나서 지금 하는 걸로 도망치다니. 그리고 가업을 승계하고 사업을 한다는 게 어떤 정글인지도 모르고. 그냥 단순히, 평생 할 일을 젊을 때 고생해서 만들고 나중에는 좀 편하게 살자 이런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렇게 결정했고 오랜 시간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아버지 회사가 토목 자재 제조업을 하는 전통적인 산업의 중소기업이라는 것, 즉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는 것, 중국이라는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도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뭐든 어차피 다 모르는 거고 처음인데 뭐. 


나름 미래 계획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으니 예비아내에게 상의할 차례. 아내는 의외로 쉽게 동의했다. 아니 우리 아버지는 사업 시작한다고 당시 다니던 포항제철(현 포스코) 퇴사한다고 할 때 온 외갓집 가족들이 뜯어말렸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각오를 했었는데 정말 쉽게 수긍해서 놀랐다. 아내는 내가 회사에서 매일 칼퇴근하고 큰 미련 없이 다니는 걸로 보여서 언젠간 가업을 이으러 가겠거니 하고 생각했단다. 난 그냥 별생각 없이 나름 열심히 회사생활 했는데.(...) 다만 중국에 가는 건 생각 못했던 부분이지만 중국이 멀지도 않으니 월간부부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대신 신혼 반년 정도는 같이 살다 가라고 했다. 이렇게 결혼 준비와 이직(?) 준비를 함께 시작했다. 2014년 봄이었다.


본인에게 닥칠 미래를 모르는 채로 청혼을 승낙한 아내님(이땐 나도 몰랐음)


매거진의 이전글 01. 꿈은 모르겠고요 꿀은 빨고 싶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