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나는 당시 애인이었던 아내에게 청혼했다. 연애 7년 차, 곧 30대가 되는 나이, 둘 다 대기업에 입사한 지 1년 넘어 각자의 회사생활도 나름 안정된 시기, 딱 결혼할 때였다. 아내의 승낙과 함께 우리는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바로 결혼 준비에 돌입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은 하되 천천히 하자. 아직 젊으니 각자의 생활을 좀 더 즐기고 양가 식구들과 부대끼는 시기를 조금 늦추기로. 그렇게 오래된 연인과 예비부부 사이 어딘가의 위치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와중에 나에게 미래에 대한 큰 화두가 떨어졌다. 아버지 회사? 중국? 먼저 회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만족스러운가? 그렇다. 일, 근무환경, 연봉 다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비전이 있는가? 여기서 조금 망설여졌다. 제조업 R&D 프로젝트 매니저. 특이한 직군이고 더 배울 것도 많지만 이걸로 정년까지 해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서브 조직에서 일하다가 언젠가는 영업, 생산, 연구개발, 재무 같은 일을 다시 배워서 시너지를 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10년쯤 더 일하고 배우다가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텐데.
나중에 나이 들어 도전하기 겁난다. 젊은 지금 도전을 하자.
이제 와서 보니 좀 아이러니한 생각이었다. 미래의 도전이 겁나서 지금 하는 걸로 도망치다니. 그리고 가업을 승계하고 사업을 한다는 게 어떤 정글인지도 모르고. 그냥 단순히, 평생 할 일을 젊을 때 고생해서 만들고 나중에는 좀 편하게 살자 이런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렇게 결정했고 오랜 시간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아버지 회사가 토목 자재 제조업을 하는 전통적인 산업의 중소기업이라는 것, 즉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는 것, 중국이라는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도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뭐든 어차피 다 모르는 거고 처음인데 뭐.
나름 미래 계획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으니 예비아내에게 상의할 차례. 아내는 의외로 쉽게 동의했다. 아니 우리 아버지는 사업 시작한다고 당시 다니던 포항제철(현 포스코) 퇴사한다고 할 때 온 외갓집 가족들이 뜯어말렸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각오를 했었는데 정말 쉽게 수긍해서 놀랐다. 아내는 내가 회사에서 매일 칼퇴근하고 큰 미련 없이 다니는 걸로 보여서 언젠간 가업을 이으러 가겠거니 하고 생각했단다. 난 그냥 별생각 없이 나름 열심히 회사생활 했는데.(...) 다만 중국에 가는 건 생각 못했던 부분이지만 중국이 멀지도 않으니 월간부부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대신 신혼 반년 정도는 같이 살다 가라고 했다. 이렇게 결혼 준비와 이직(?) 준비를 함께 시작했다. 2014년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