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짠짠이아빠 Aug 13. 2023

빅웨딩이 된 우리의 결혼식

원래는 아들 돌잔치 이야기가 나올 순서인데 돌잔치 포함 아들과 관련된 행사는 아내가 다 준비해서 이야깃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대신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했던 우리 결혼식이 생각났다. 내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것들을 다 실현한, 그래서 아내의 드레스 외에는 모든 것을 내가 준비한, 스몰 웨딩을 표방했으나 빅웨딩이 된 우리 결혼식 이야기.


2012년 7월, 연애 6년 차, 둘 다 동시에 대기업에 취업한 시기, 아내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까였다. 아내는 당시 정말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훅 들어와서 너무너무 당황했다고. 어차피 내 목적은 당장 결혼하는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화두를 던져서 아내를 그 프레임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았다. 캠퍼스 커플로서의 연애에서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로의 전환이랄까. 이후로 나는 승낙받을 목표로 한 청혼을 할 시기를 고민했다.


2013년 추석, 아내가 고향에 내려갔을 때 "걔네 아버지 뭐하시노" 얘기가 나왔다. 오케이 이제 때가 되었다. 그해 10월 남산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내에게 청혼했다. 이번엔 오케이. 이제부터 본격적인 결혼 준비 시작,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천천히 진행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시가와 처가가 생기기 전에 좀 더 놀고 싶었다.


2014년 설, 각자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양가 모두 연애기간이 오래된 것을 알고 있고 만나본 적도 있고 하니 자연스럽게 결혼 진행. 아들 여자친구, 딸 남자친구에서 예비사위, 예비며느리가 되었다.


2014년 8월, 상견례를 했다. "결혼 준비에 대한 모든 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양가 부모님은 각자의 친지들만 알아서 챙기십시오."라고 선언하는 자리였다. 다행히 이 의견을 받아들여주셔서 예물, 예단 등등 모두 삭제. 양가 어머니 한복만 우리가 해드리고 그 외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 시작. 결혼식 날짜를 골랐다. 2015년 설연휴 전주 토요일. 오로지 신혼여행 2주를 가기 위한 일정이었다. 보통은 결혼휴가로 5일을 주니 거기에 설연휴를 연결하고 이틀 정도 휴가를 더 써서 2주간의 신혼여행 일정 완성. 여행지는 스페인. 아내와 가는 첫 해외여행이라 신나게 준비했다. 신혼여행 가려고 결혼하는 사람처럼.(...)


결혼식을 두 번 하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을 위한 일반적인 결혼식과 우리 하객들을 위한 결혼식. 각각 창원 결혼식과 서울 결혼식으로 이름 지었다. 나는 일종의 스몰 웨딩처럼 친구들과 파티 같은 결혼식을 하는 로망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그렇다고 양가 모두 개혼인 상황을 무시할 수 없으니 둘 다 하기로 결정. 어르신들과 남쪽 지방(창원과 순천) 친구 하객들은 창원으로, 대부분의 우리 친구 하객들은 서울로, 그런데 하루에 둘 다 한다는 게 함정.(...)


어르신들을 위한 결혼식은 아내 고향인 창원에서 하기로 일찌감치 정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외가인 경주에서 결혼을 해서 당연히 결혼식은 신부 쪽 집에서 하는 걸로 생각했고 처가에선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쉽게 결정. 결혼식장은 몇 군데 가보고 교통과 식사가 좋았던 곳으로 바로 결정. 스드메도 식장과 연계된 걸로 바로 결정. 창원 결혼식 관련 굵직한 의사결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창원 결혼식이 얼추 정리되었으니 나의 로망, 서울 결혼식을 준비할 차례. 1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파티장소를 열심히 알아봤다. 주중에 검색하고 주말에 답사 다니기를 한 달 정도 했는데 마땅한 장소가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잔치'라는 키워드가 떠올라서 검색했더니 여태까지 찾아 헤매던 장소들이 마구 나타났다. 여러 곳을 답사한 뒤 위치, 음식, 가격이 적당하고 130명 수용 가능하고 밤 10시까지 대관해 준다는 곳으로 결정. 그 후로는 결혼식을 내 로망대로 채우는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식순을 짜고 필요한 걸 세팅하고 청첩장 돌리는 게 즐거웠다.


이제부턴 결혼식 타임라인.


결혼식 전날

12:00 오후 반차로 시작하는 결혼 휴가의 시작. 퇴근하고 집에 들러 짐 챙겨서 창원으로.

18:00 호텔 도착. 저녁 식사, 막바지 점검.


창원 결혼식

07:00 창원 결혼식 축가단 20여 명 서울에서 대절 버스로 출발. 아침 도시락 제공.

09:00 아내, 양가 어머니 메이크업 시작.

10:30 양가 직계가족사진 촬영.

11:00 하객 맞이 시작. 운 좋게 11시 결혼식이 없어서 여유롭게 하객 맞이.

11:40 축가단 도착. 신부대기실 들르기가 무섭게 축가 연습 하러 가라고 했던 기억이(...)

12:00 결혼식 시작. 이제는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조금씩 확산 중이던 주례 없는 결혼식. 

- 양가 어머니 화촉 점화, 신랑 신부 입장

- 신부 아버지 성혼 선언, 신랑 아버지 축사

- 축가단의 축가, 나와 엄마의 듀엣 답가

- 혼주 인사, 신랑 신부 행진

- 양가 친지 사진 촬영, 하객 사진 촬영


창원 결혼식에서 신경 쓴 것은 축가단, 하객 사진 촬영, 엄마와 함께한 답가였다. 먼 길 오지 말라는 차원에서 서울 결혼식을 하는데 서울에서 창원까지 내려오고 이어서 저녁의 서울 결혼식까지 기꺼이 참석해 줄 친구들을 20여 명 섭외했다. 여태껏 친구들과 부지런히 술 먹고 논 보람이(...) 


결혼식 전에 직계가족사진촬영을 했다. 다른 결혼식을 다녀보니 식 끝나고 직계가족사진 촬영이 오래 걸려서 하객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던 걸 피하고 싶은 생각. 처음 있는 경우라며 하객들 반응도 좋았다.


한 친구 결혼식을 갔는데 신랑 엄마가 기타를 치고 신랑이 노래하는 걸 봤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엄마랑 듀엣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의 성가대 20여 년 공력을 살리기로. 여기에 대해 하객들 반응이 정말 좋았고 나랑 엄마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서울 결혼식

14:30 창원 축가단 서울로 출발.

15:00 결혼식 끝나고 인사하고 점심 먹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김해공항으로 출발.

16:30 김해-김포 항공 탑승.

17:30 김포공항 도착. 서초에 있는 결혼식장으로 출발.

18:30 결혼식장 도착. 결혼식 준비.

19:00 하객 맞이 하면서 결혼식 준비.

19:30 식사와 주류 제공 시작. 창원 축가단 도착.

20:00 결혼식 시작. 약 30분 정도의 간단한 예식.

- 신랑 신부 동시 입장

- 선배님의 축사

- 하객들의 축가, 나의 답가

- 신랑 신부 서로에게 편지 읽기, 퀴즈

- 하객 대상 퀴즈 및 선물 증정

- 신랑 신부 인사 후 행진

23:00 까지 하객들과 술 먹고 놀기 그리고 식장 정리

01:00 까지 하객들 2차 장소 돌아다니며 술 먹고 놀기

02:00 귀가 후 취침

05:30 신혼여행 하러 인천공항으로 출발


서울 결혼식은 우리 결혼식 핑계로 많이 모여서 술 먹고 노는 파티로 계획했다. 양가 가족 친지들은 모두 창원에 두고 우리 둘만 올라와서 우리 하객들만 모이는 자리. 피로연 같지만 명색이 결혼식이니 나름의 예식도 구성해 봤다.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결혼을 앞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읽기로 했는데 아내는 김포로 올라오는 비행기에서 재치 있는 이야기를 써둬서 반응이 좋았고 나는 안 쓰고 대강 구상만 했다가 횡설수설해서 사람들을 웃겨버렸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각자 답을 쓰는 퀴즈를 했는데 "처음 같이 본 영화 제목은?", 첫 키스 장소는?" 같은 질문들로 채웠고 다행히 같이 답을 맞혔다. 그리고 하객들에게 선물을 줄 목적으로 하객 대상 퀴즈를 했는데 "신랑이 소속된 팀 이름은?", "신부의 고등학교 이름은?" 이런 식의 질문을 해서 특정 하객 그룹이 쉽게 맞힐 수 있도록 하고 모든 하객 그룹에 선물이 돌아가도록 구성했다. 예식이 딱히 길지도 않고 하객들이 재미있어해서 잘 지나갔다.


예식이 끝나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술 먹고 얘기 나누고 사진 찍고 놀았다. 다만, 내가 너무 신나서 노느라 아내를 별로 안 챙겼다는 핀잔을 들었다.(...) 무제한 제공되는 음식과 술을 먹으며 하객들도 각자들 신나게 놀았고 10시에 마무리해야 할 자리를 추가비용 내고 11시까지 연장했다. 그러고도 술이 부족해서 몇 그룹은 2차를 갔고 우리는 거길 또 다 들렀다. 우리도 처음이었지만 하객들도 처음 경험해 보는 신기한 결혼식이었고 정말 재밌고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 날 하루 전체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준비할 게 많았지만 그것도 즐거웠던, 세상에 하나뿐인 결혼식이었다. 남편의 욕심을 이해하고 많은 부분 양보해 준 아내에게 감사를.(...)


이 결혼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존경하는 선배님의 축사였는데,

지금 신랑 신부는 유일하게 본인이 선택한 가족이에요.
그래서 더 서로 소중히 대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잘 지키면서 살고 있을까.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빅웨딩을 마치고 둥둥 떠다닌 신혼여행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과 동네 공원 도장 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