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제주도에서 산다는 건
2019년 4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국내 5성 호텔의 본사에서 비서 겸 마케팅 업무를 하던 내게 떨어진 제주도 장기출장 명령. 마케팅 업무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호텔 업무에 무지했던 나에게 극단의 조치가 떨어진 것이다. 3개월 동안 제주도 호텔에 내려가서 객실, 식음, 호텔 전반의 업무를 익히고 돌아오는 것이 미션이었다. 퇴사를 하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내가 제주도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고 어려운 숙제였다. 당장 어떻게 살아갈지부터가 걱정이었다. 지금껏 운이 좋게도 집에서 30분 거리의 학교만 다녀왔던 나는 당연히 자취라곤 해본 적 없었고, 기숙사 생활을 하던 친구들의 불편을 듣기만 해왔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산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과제였고 무엇보다 잠꼬대가 심한 나를 감당할 룸메이트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성인이 됐음에도 걱정만 안기는 딸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인생 최대 이슈를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엄마와 아빠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밥은 잘 챙겨 먹을지, 빨래는 제대로 할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걱정하는 엄마와 외국인이 많이 오고 간다며, 어디서 어떤 일을 하던 사람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안전이 걱정된다는 아빠, 그 틈에 불안해 하는 나까지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 논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모았다. 그리고 그때 우리 세 사람의 머리를 강타하는 목소리 하나. “다들 제주도 가고 싶어서 난리인데, 너는 이미 일할 곳도 있잖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조금 더 산 오빠의 목소리다. 오빠는 언제고 한 번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더니 너무 좋다고 그 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녀올 때마다 늘어나는 제주도 친구들과 제주도에서의 삶을 동경했고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제주도로 간다고 하니 옆에서 거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빠는 우리 가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는 나이가 몇인데(당시 내 나이는 28살이었다.) 아직도 밥 걱정에 빨래 걱정까지 하냐고 나무랐고, 아빠에게는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아무리 다녀도 외국인보다는 한국인이 많다고 안심을 시켰다. 내게는 그저 부럽다며, 자신은 제주도에 가서 살고 싶어도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한데 너는 이미 직장이 있고, 기숙사가 제공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우리는 설득당했다. 이참에 부모님은 나를 시집보낸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떨어지는 것보다는 연습을 해보자며 내가 제주도에 가는 것을 찬성하셨고, 나는 오빠가 부럽다는 말에 우쭐하며 설득당했다. 오빠와 나는 6살 차로, 나이 차이가 꽤 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 만큼 어려서부터 참 투닥거렸다. 이번에도 오빠가 부럽다고 하니 약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 못 먹어도 고다! 일단 한번 내려가 보자!"
결심이 서고 나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복장은 단정해야 했다. 유니폼이 지급된다고 들었지만 몇 벌의 정장을 더 챙기기로 하고,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에 당연히 제주도에 가면 쉬는 날은 무조건 놀러 나갈 마음으로 휴양지 룩도 몇 벌 꾸겨넣었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니까 요가복도 챙기고, 통풍 잘되는 여름 잠옷도 있어야 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옷을 챙기다 보니 자연스레 시선은 신발장으로 이동했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지! 바캉스 룩에 운동화를 신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구두, 플랫슈즈, 슬리퍼, 운동화까지 꾸역꾸역 챙기려 하니 25인치 캐리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비행기 탑승 1일 전, 급히 아울렛에 들려 30인치 캐리어를 구입했다. 이 전에 유럽 여행을 통해 꼭 30인치 캐리어가 필요하다 느낀 나는 큰 캐리어를 사기 위해 부모님 눈치를 살피며 때를 기다리던 찰나,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상황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넉넉해진 캐리어에 아직 챙기지 못한 카메라와 아이패드를 더 챙겨 넣고 나니 드디어 갈 준비가 끝났다.
제주도에 가면 3개월 동안 집에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괜히 부모님 얼굴을 보면 혹시나 마음이 내려앉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까 봐 염려스러웠다. 중간에 집에 오지 않겠다는 내 말에 부모님은 내심 섭섭해하셨지만 고집스러운 딸을 꺾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지지해주셨고, 방에는 무거운 가방과 무거운 마음만 남았다.
꿈같은 일 아닌가요?
드디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제주도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먹구름 낀 하늘은 앞으로의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캐리어를 끌고 게이트 가장 끝으로 가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며 1년간 업무용 문자만 주고받았던 총무팀 대리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대리님 저 도착했어요. 버스 타고 바로 가겠습니다." 출근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서 공항으로 이동했고, 때문에 슬슬 배가 고파왔지만 중간에 식당에 갈 수는 없었다. 왠지 업무시간에 딴짓을 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호텔까지는 버스로도 약 1시간을 더 가야 도착할 수 있었고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호텔은 풀향으로 가득했다. 낯설지만 익숙한 듯, 어색하지만 괜찮은 척 양쪽 입꼬리를 활짝 올려 웃으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본사에서 온 박진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씩 오고 가고 빠지지 않는 한마디 “짐이 많네” 그렇게 나와 내 캐리어의 존재감을 알렸다.